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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지친 나라에서 온 편지] 일본-아베 정권을 그냥 포기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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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코로나19 확진자 수 ‘관리’ 외에 방역, 보상에 관심 없는 일본

그런 정부를 진심으로 지지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시민들


한겨레21

3월31일 정오. 평소라면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일본 도쿄 아사쿠사 니시산도 거리가 무척 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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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정말 믿을 수 없는 3개월이다. 2년차에 접어든 회사는 순조롭기 그지없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거래처의 송년회와 신년회에 초대받았다. 우리는 하나같이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기대하며 꿈에 부풀었다. 우리 같은 인테리어업은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크지 않은 중소·영세기업이지만 어떻게든 떡고물이 떨어질 거라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불과 3개월 만에 끝났다.

“너 돈 좀 있냐”고 묻는 ‘선배’ 사장님

그나마 나는 운이 좋았다. 2월 초, 아직 이 ‘역병’의 정체를 제대로 몰랐던 그때 착수금을 미리 받은 대규모 리폼 공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픽픽 쓰러졌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에서도 살아남았던, 통관회사를 운영한 오랜 동갑내기 친구가 회사를 접었다. 호기롭게 올림픽 대목을 노리고 여러 숙박업소를 한껏 늘렸던 몇몇 선배는 아예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설마 하는 생각에 이리저리 수소문해 겨우 연락이 됐는데 “너 돈 좀 있냐?”는 질문을 들을 때의 곤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본 사회에서 몇십 년 살며 번듯한 사업체를 꾸렸고, 남부럽지 않게 살던 사람들이 불과 몇 주, 몇 달 만에 지금까지 겪지 못한 비참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게다가 외국인(한국인)이기에 극한 상황까지 가버리면 포비아(공포)에 근거한 차별과 혐오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화가 난다. 미증유의 감염병이고,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니 누구 탓을 하고 말 것도 없다. 상대적으로 더 고통받는지, 덜 괴로운지의 차이만 있다. 그럼에도 아베 신조 정권은 너무 많이 틀렸다. 지난 3개월 동안 그들이 내놓은 대책은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다. 이렇게나 틀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1월16일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처음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채 일주일이 흘렀다. 1월24일 아베 총리는 도쿄에서 첫 감염자가 나오고 중국 우한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전세기를 동원해 우한에 있는 일본인들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 대응은 전혀 하지 않았다. 감염자들이 안 나왔다면 모르겠다. 1월24~31일 각 지역에서 외국 도항 경력이 없는 환자들이 산발적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정권은 물론 일본 언론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우한의 아비규환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인 양 때때로 보도될 뿐이었다. 위기관리 의식이 제로였다. 최초의 실기(失機)다.

두 번째 실수는, 국제적으로 보도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방치다. 이미 국내 감염자가 여러 지역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원천 차단’ 대책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승객들을 내리게 해봤자 머물 곳이 없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데 끝내 거짓말했다. 그 크루즈선은 승객의 15%에 해당하는 700여 명의 감염자를 발생시키는 비극으로 끝났다. 크루즈선 방역이 실패하면서 일본 내에선 ‘의료 붕괴’라는 말이 퍼지게 된다. 선내에 투입된 의료진의 기진맥진한 모습이 언론을 탔다. 선내에서 감염된 의료진과 후생노동성 직원이 나왔고, 설상가상으로 무증상 환자가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한다는 데이터까지 얻어버렸다.

일본 정부는 당황했다. 무증상과 가벼운 증상의 환자까지 다 검사하면 과연 일본의 의료 인프라가 버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먼저 생겨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 때문에 적극적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것도 일리 있지만, 나는 한 달 가까이 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의 방역 경험이 일본 사회에 엄청난 공포를 안겨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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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긴급사태’를 선언하기 직전이던 4월7일 아침, 일본 도쿄 고가네이 초등학교에선 예년처럼 입학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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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프다고 무작정 검사받으면 어떡하냐고?

크루즈선의 실기가 이어지면서 일본 정부는 그제야 정부 산하에 ‘전문가회의’라는 대책본부를 둔다. 2월16일이다. 첫 환자가 생기고 딱 한 달이 지난 날이다. 이 기념비적인 첫 모임에 아베 총리는 7분간 자리를 지켰다. 위기의식이 없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한 7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일본의 확진자 수는 ‘관리’를 잘한 덕분에 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틈나는 대로 일본의 방역이 옳다고 자화자찬했다. 일본 언론도 동조했다. 그들은 어차피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는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인데, 조금 아프다고 무작정 검사받으면 진짜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못 받는, 이른바 ‘의료 붕괴’에 빠진다고 겁을 줬다. 게다가 한국이 좋은 예가 됐다. 신천지 사태로 난리가 났던 때고, 연일 피곤한 모습의 한국 의료진이 일본 TV에 나왔다. 관련 전문가들은 한국의 PCR 검사 방식이 의료 붕괴를 불러일으킨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일본이 잘하고 있다는데, 아베 총리는 3월5일 갑자기 전국일제휴교령을 요청했다. 문부과학성과 사전 조율이 안 된 일방적인 발표였고, 일본 사회는 대혼란에 빠졌다. 이 발표는 결과적으로 크루즈선에 이은 아베 총리의 두 번째 결정적인 실수가 됐다. 3월7일부터 3월19일까지 어디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3월20~22일 사흘의 연휴 기간에 수많은 일본인이 밖으로 나갔다. 밀집된 공간에 바글바글 몰렸다. 전철을 탔고, 외식을 즐겼고, 노래방에 갔다. 4월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감염경로 불명’의 확진자들을 역산해보면 딱 이 시기다.

전세계 최대라는 보상 정책의 실체

비극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아베 총리가 항상 언급하는 전문가회의에서 3월19일 ‘코로나19 전망’을 발표했다는데, 이날 감염증 전문가들은 1~2주 내에 폭발적으로 감염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교롭게도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날 아베 총리가 긴급하게 한 번 더, 강한 어조로 외출 자제 등을 요청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아베 총리의 리더십에 금이 가는 건 앞에 언급한 여러 이유가 중첩됐기 때문이다. 긴급사태 선언을 내리는 것조차 며칠이나 회의한다. 보다 못해 각급 학교는 알아서 졸업식과 입학식을 거행했다. 나 역시 넷째와 둘째가 각각 초등학교, 중학교에 입학했다. 아무리 간소화했다지만 밀폐된 공간에 다닥다닥 앉을 수밖에 없다. 의미 없지 않냐고, 내가 의문을 표하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이왕 늦었는데 뭐… 지금 와서 이런 행사를 하니 마니 논쟁하는 것 자체가 웃기잖아. 그렇다면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지. 이것(마스크 쓰고 단체사진 찍는 것)도 나중에 시간 지나서 보면 색다른 추억이 될지도 몰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일본인들은 아베 정권을 그냥 포기했구나. 대안세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지지하는 거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지지는 그야말로 소수에 그치지 않을까. 긴급사태 선언이 발령되자 도쿄를 제외한 6개 지역 지자체장들은 즉시 “사적 업종의 휴업시설 지정은 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도쿄도는 휴업을 요청하겠지만, 사흘 정도 어떤 업종을 선정할지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래서는 영이 서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4월8일 긴급사태가 선언됐어도 별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보상 정책도 말만 거창하다. 전세계 최대라며 108조엔(약 1210조원)을 설정했지만, 어디까지나 규모가 그렇다는 거지 정부가 실제 지출하는 지원액은 20조엔 정도에 불과하다. 이것도 실제 누가 혜택을 보는지 정해진 것은 없다. 처음부터 안 믿는 사람도 많다. 가구당 면마스크 두 장씩 준다는, 누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정책을 코로나19 대책이랍시고 내놨던 정부다.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하루에 8천 건씩 한다고 했는데 실제 2천 건밖에 안 했고, 지금은 2만 건까지 가능하다고 했는데 후생노동성 누리집에는 여전히 일일 최대 검사 가능 건수가 5천 건으로 나와 있다.

남은 길은 각자도생뿐

처음부터 대처를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와서 “처음부터 잘했어야지!”라고 질책하는 이는 없다. 한국이 좀 특출했을 뿐이지 대부분 나라도 대응이 늦었다. 하지만 일본은 늦어도 너무 늦다. 게다가 국가 지도자인 아베 총리가 이 전무후무한 3개월을 지나오면서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 바보 같은 정책을 펴고, 종국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고집불통 ‘꼰대’로 전락했다.

바뀔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힘을 낼 수 있겠지만, 현실은 암울 자체다. 결국 여기에선 각자도생해야 한다. 국가의 존재 가치를 묻는 건 사치다. 통관회사를 접은 동갑내기 친구에게 어떻게든 버텨보자고 말했다. 친구는 4월16일부터 우리 회사에 출근하기로 했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현실의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물론 인류는 언제나 답을 찾아왔고 코로나19도 극복할 것이다. 일본은 아마 마지막으로 극복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이젠 관심조차 없지만 말이다.

도쿄(일본)=글·사진 박철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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