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기관 부정적 전망 잇따라 / “코로나 전부터 기초체력 약해져 / 정책환경 美 대공황 초기와 유사 / 감염병 확산 맞물려 상황 더 악화” / 해외공장 셧다운·소비심리 위축… 불안감 증폭 / 현대차·삼성전자 등 해외사업체 가동중단 연장… 사태 장기화 조짐 / 소매유통, 2분기 전망 사상 최저점 / 선전 온라인·홈쇼핑마저 ‘빨간불’ / 미·중 무역분쟁도 전선 확대 / 양상 곳곳 악재에 경제 앞날은 안갯속 / 경총, 정부에 건의사항 27개 발표
국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점차 안정화되고 있지만 이로 인한 잿빛 터널은 한참 더 이어질 전망이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회복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대세다. 현 정부 들어 지속한 반(反)시장적 정책 탓에 경제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맞이한 코로나19 충격의 여진이 상당할 것이라는 얘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제연구원은 12일 ‘주요 경제위기와 현재 위기의 차이점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한국경제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져 있었다는 게 주요 근거다.
특히 한경연은 현재의 한국경제를 둘러싼 정책환경이 과거 미국 대공황 초기와 유사하다고 짚었다. 한경연은 “미국은 대공황 초기 1933년에 최저임금제 도입, 주 40시간 노동시간, 생산량 제한 등 강력한 반시장 정책을 펼쳤다”며 “이러한 정책으로 대변되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올해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1%로 전망되는 등 이미 하락폭은 점차 커지고 있던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까지 덮치며 상황이 더 악화했다는 의미다.
한경연은 또 “세계교역 증가율이 약 6%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과거 사례를 보면 각국이 비관세장벽을 높이는 방식으로 보호무역조치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주식시장의 경우에도 실물경제의 호전 없이는 결국 하향 추세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경연 한경연 경제연구실장은 “세계 금융위기 때는 한국경제가 기초체력이 나쁘지 않아서 신속히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득주도성장으로 성장률 하락폭이 커지던 상황”이라며 “(금융위기 때보다) 장기침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 8일 현대차 울산공장 야적장과 수출선적부두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최근 국내 기업들의 해외 공장 생산차질과 국내외 소비심리 위축 역시 불황 장기화에 대한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이미 수차례 멈췄다 가동하길 반복했던 자동차와 전자 등의 해외 공장들의 셧다운(가동중단)이 장기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달 18일부터 가동을 멈춘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다음달 1일까지 문을 닫는다. 애초 13일부터 재개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내 확산세 등을 감안해 휴업을 연장키로 했다. 현대차 브라질 공장, 기아차 미국 조지아 공장, 멕시코 공장 등도 현지 정부 방침 등에 따라 각각 휴업 기간을 늘렸다.
현대·기아차 한국과 중국 공장은 문은 열었지만 수출물량이 줄어들며 휴업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멕시코의 TV 공장을 13일부터 멈추기로 했다. 현지 수요 감소와 부품 수급, 물류 차질 등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 탓이다.
삼성과 LG의 유럽, 인도 공장들의 셧다운 연장 가능성도 다분한 상황이다. 이밖에도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전기차 배터리 업체,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업체의 해외 가공센터 등도 해외 공장의 셧다운 추가 및 연장 가능성이 재차 거론되고 있다.
소매유통 기업들의 2분기 경제전망도 사상 최저점까지 내려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올 2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가 66으로 2002년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낮았다고 이날 밝혔다. RBSI는 소매유통업체들의 현장체감 경기를 수치화한 것으로 0~200으로 표시되며 100을 웃돌면 호전을 전망한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은 그 반대다.
업종별로 백화점, 슈퍼마켓, 편의점 등이 모두 전분기대비 하락했고, 대형마트는 지난 분기 80에서 이번에 44로 최대 36포인트 하락해 낙폭이 가장 컸다. 그동안 유일하게 긍정적 전망을 이어온 온라인·홈쇼핑 업계 상황도 변했다. 온라인·홈쇼핑은 1분기 105에서 2분기엔 84로 집계됐다.
국민의 회복에 대한 기대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맥킨지앤드컴퍼니가 발간한 소비자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달 28∼29일 설문한 18세 이상 한국인 소비자 600명 중 ‘경제가 2∼3개월 내 반등해 코로나19 사태 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5%에 그쳤다. 대신 응답자의 61%는 ‘경제 충격이 6∼12개월 또는 그 이상 오래 이어지면서 경기 침체나 저성장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14%는 ‘경제에 항구적인 충격이 가해지면서 장기간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의 대선과 맞물린 미·중 무역분쟁 심화 가능성도 우려된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날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진원지 공방을 벌이는 등 최근 미·중 분쟁의 전선(戰線)이 다시 확장되는 양상이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앞으로 미·중 관계는 1단계 합의 이행을 통해 리커플링(재동조화)으로 돌아갈 유인과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이 의료품 자급 등 보건 안보를 이유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가속할 유인이 혼재하는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한국 기업은 대중 압박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과 코로나19 이후 세계경기 회복에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중국 사이에서 상황별 시나리오를 충분히 점검하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기업 유동성 위기… 자금 공급 늘려 달라”
“코로나19라는 외부의 불가항력적 충격에 따라 향후 전개될 위기의 폭과 강도를 예단하기 어렵다. 모든 기업이 지금의 위기를 버텨나가고 향후에 경제활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총체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전방위적인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여서 대다수 업종에서 정책자금 지원 등을 통한 유동성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촉구했다. 특별연장근로의 폭넓은 인정, 고용유지 지원의 확대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12일 코로나19 피해가 큰 15개 단체의 의견을 모아 공통 건의사항 8개, 업종별 핵심 건의사항 19개를 발표했다. 경총은 국내 71개 업종별 단체로 구성된 경제단체협의회 사무국 자격으로 이를 건의했다.
경총은 특히 “대다수 업종이 자금 유동성 문제를 우선 제기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저조한데 사업장 유지를 위한 고정비와 고용 유지를 위한 인건비는 예년수준으로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섬유업은 ‘봄 상품’ 시장을 잃어버린 탓에 대금 결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부분 해외에 있는 공장의 인건비 지급 문제가 국내 본사에 자금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경총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기업은 피해 규모에 따라 정책자금 지원대상에 포함해 자금 유동성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행이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사상 처음으로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기로 했다. 뉴스1 |
항공분야 긴급 지원대책은 융자지원이 저비용항공사(LCC)에 한정돼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경총은 지적했다. 경총은 “대기업도 중소기업·소상공인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점을 감안해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업용 항공기 재산세 한시적 감면, 항공기 취득세·부분품 감면액의 농어촌특별세 한시적 면제 등도 함께 요구했다.
경총은 이 밖에 각 기업에서 근로시간, 고용 유지 등이 문제로 제기됐다고 전했다. 경총은 “코로나19로 인한 생산 차질을 만회하기 위해 특별연장근로를 폭넓게 인정하고 고용 유지 지원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업은 재난선포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우선 추진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운송업은 노선버스운송업 긴급경영자금 지원과 유가보조금 전액 지원, 제약업은 의약품 수출입 절차 간소화와 신속화 등을 제안했다. 대한건설협회도 이날 코로나19 극복방안으로 건설투자 확대, 주택·건설규제 혁신 등을 담은 ‘건설 및 주택 63개 규제개혁과제’를 국회와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 등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SOC 예산의 지속적인 확충 등 건설투자 확대와 다양한 건설규제의 혁신을 통한 건설산업 활력 제고 방안이 담겼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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