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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코로나 시대의 공항] 넙디마을의 젊은이들 “왜 꿈을 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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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인천공항에 일자리 둔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넙디마을

한겨레2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활동가들이 인천 중구 운서동 넙디마을에서 현장 노동상담소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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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디마을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15분 남짓 달리면 나오는 영종도 안에 있는 마을(행정구역상 인천 중구 운서동)이다. 마을이 ‘넓어서’ 넙디라지만,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3~4층짜리 다가구주택들이 답답하게 연이어 있다. 이곳의 원룸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40만원 수준이다. 편의시설이 더 갖춰져 있고 교통이 편리한 공항철도 운서역 근처 오피스텔보다는 주거비가 저렴하다. 인천공항이나 호텔·카지노 등에서 일하는 5천 명이 모여 사는데 인구 절반 이상이 20~30대다(2019년 7월 기준). ‘공항 청년노동자들의 마을’로 불리는 이유다.

“손님 없어서 죽을 것 같다”

3월25일 오후, 마을 큰길가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버스 배차 간격이 길고 공항까지 30분 넘게 걸려, 주민들은 주로 택시를 탄다. 24시간 교대근무하는 노동자가 많은 것도 택시를 선호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날은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한 택시기사가 스트레칭하며 말했다. “원래 여기는 아침·저녁·새벽 할 것 없이 들어오자마자 손님 태워서 공항으로 나가는 곳인데 한 시간째 대기하고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공항 직원이 줄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어제 태운 여자 손님은 면세점에서 초콜릿을 팔았는데 무급휴직 된다고 짐 싸서 부모 집으로 간다더라고요.” 다른 택시기사가 거들었다. “새벽 출근자가 많아서 새벽 4시에 나오면 아침 시간에 8만~9만원은 벌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침에 1만원 찍기도 힘들어요. 퇴근 시간에 호출 예약하던 손님도 줄었고.”

공항 직원들의 무급휴직 여파를 체감하는 건 자영업자와 부동산중개업자도 마찬가지였다. 프랜차이즈 커피숍 사장은 “어제 프랜차이즈 관리자가 왔는데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하더라. 우리는 테이크아웃을 많이 하는 단골 장사인데, 늘 오시던 분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카지노에서 일하던 단골은 부산 고향으로 간다고 한동안 못 볼 거라고 얘기하고…. 코로나19 걸려서 죽는 게 아니라 손님이 없어서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운서역 근처 한 부동산중개소 사장도 “무급휴직 한다고 해서 월세 밀릴 것을 걱정하는 집주인이 많다. 어떤 세입자는 생활비가 모자란다고 집주인에게 보증금에서 500만원만 빼달라고 했단다. 공항에서 사람을 안 뽑으니까 집 구하러 오는 사람은 없고, 집 비운다는 사람만 넘쳐난다”고 전했다.

자영업자들의 걱정은 냉혹한 현실의 끝자락이다. 반대쪽 자락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항공·유관 산업의 고용 위기를 그대로 떠안은 젊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다. 첫 일자리로, 또는 좀더 나은 일자리로 공항을 선택한 청년노동자들의 하루하루는 벼랑 끝에 몰린 듯 위태롭다.

남들이 잠든 시간, 인천공항 옆 면세점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소속 김선영(33·가명)씨는 회사에서 내라는 무급휴직 동의서를 쓰지 못했다. 그는 고객이 인터넷면세점에서 주문한 물건을 물류센터에서 찾아 담는 일을 해왔다. 대형 면세점들은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면세품을 찾아 담고(피킹), 포장하고, 인천공항 인도장이나 인천항까지 배송하는 업무를 각각 하청업체에 도급하고 있다. 1월 말부터 코로나19가 중국에서 퍼지고 면세점 주 고객인 중국 보따리상들의 주문이 줄어들자, 회사에선 있는 연차를 소진하라고 했다. “3월이 되니까 하루 처리해야 하는 일이 10분의 1로 줄었더라고요. 회사에선 이 위기가 11월까지 갈 것 같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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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청년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넙디마을 전경.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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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딱 한 번의 공제 제도

3월 한 달 동안 회사는 임금의 70%에 해당하는 휴업수당을 주면서 직원 일부를 유급휴직을 보냈다. 그러나 4월부터는 무급휴직을 권했다.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인천공항 관련 사업장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장에도 용역을 수행하는 업체다. 그래서 고용보험법에 따라 다른 사업장에서 고용이 늘어날 경우 고용유지지원금 수급 대상이 되지 못한다.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은 김씨에게 회사는 “나중에 정상화되면 재입사시켜줄 테니 일단 퇴사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만둘 수도, 무급휴직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 달에 250만원 남짓 벌면서 따로 사는 어머니 생활비까지 보태야 하는 그는 수입이 끊겨서는 안 된다.

게다가 김씨가 회사를 그만두면,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 대출’과 ‘청년내일채움공제’ 혜택도 끊기게 된다. 물류센터, 공장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다 이 회사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얻은 복지 혜택이다. 청년전세자금대출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에게 연이자 1.9%로 전세보증금을 최대 1억원까지 대출해주는 사업이다. 빠듯한 월급에 월세라는 고정지출이 사라지기 때문에, 인천공항에 다니는 청년노동자 상당수가 이를 통해 집을 구한다. 청년내일채움공제도 2년 동안 중소기업을 다니며 월급에서 300만원을 적립하면 국가가 돈을 보태 1600만원에 이자까지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청년노동자의 중소기업 장기근속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생애 딱 한 번밖에 가입이 안 되기에, 김씨의 경우 현재 일자리를 잃으면 이 제도를 활용하려는 기업에 다시 취업하지 않는 한 더는 혜택을 받기 어렵다. “새 일자리는 영종도 안에서 알아봐야 할 텐데 현재 상황에서 아무도 안 뽑겠죠.”

무급휴직 강권에 무릎 꿇은 노동자들은 당장 생계를 위해 영종도 밖으로 나서고 있다. 4대보험 중복 가입을 피해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넙디마을에 살면서 면세점 물류센터에서 1년 계약직으로 일하는 손형민(39·가명)씨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물건 분류 작업을 하고 하루 삯을 벌었다. 한 달을 쉬었으니 월급이 안 나올 게 두려워서였다. 그는 “집안 사정으로 생긴 부채를 개인회생제도를 이용해 2월까지 다 갚았는데 코로나19가 몰려왔다”고 했다. 다행히 4월은 일할 수 있게 됐지만 앞날은 안갯속이다. “좀 있으면 희망퇴직을 하라고 할 것 같아요. 그게 이름처럼 희망이 있는 퇴직이 아니잖아요. 무급휴직도 제가 동의해서 한 게 아니었던 것처럼요.”

2년 뒤 정규직 채용하겠다고 했는데

지상조업사에서 일하던 하덕민(30·가명)씨도 3월 한 달 동안 서울 부모 집과 넙디마을 집을 오가며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는 2년제 대학에서 항공정비를 전공한 뒤,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 원래 꿈이던 항공정비 뜻을 품고 2018년 영종도에 정착했다. 채용 당시 회사에선 ‘수하물·화물 싣는 일을 2년 동안 하면, 정규직 채용하고 항공기 정비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주간·야간 할 것 없이 정신없이 일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한파로, 하씨는 4월까지 무급휴가를 하며 연명하고 있다. 회사가 항공정비 분야 정규직 채용을 약속한 시점(2년)이 다가오지만, 항공정비는커녕 정규직이 될지도 알 수 없는 캄캄한 상황이다. “애초에 꿈을 꿨다는 것 자체가 후회돼요. 그냥 다른 데서 돈이나 열심히 벌걸, 왜 공항에 왔나 이런 생각 많이 들죠.”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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