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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무등산 뜻처럼…5·18사형수의 꺾이지 않은 평등·정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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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주년 기획] 오월, 그날 그사람들

⑨ ‘광주의 증인’ 정동년

고2 때 4·19참여…대학 때 한일회담 반대시위

80년 ‘서울의 봄’ 때 다시 ‘역사의 소용돌이’로

보안사 조작수사로 내란수괴 내몰려 사형 선고

2년8개월 복역 뒤 풀려나 광주시민운동 중심 구실



“누구를 미워할 겨를도 없었제. 내란수괴는 평생 감당하기 버거운, 무겁고 무거운 짐이었지. 욕먹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채찍질을 해야 했어.”

5·18 사형수 정동년(77)은 1980년 5월 37살의 전남대 복학생이었다. 한-일 회담 국회 비준을 반대하다 22살에 퇴학당한 지 15년 만에 겨우 대학으로 돌아갔다. 이미 유명 기술학원의 강사로 일하고 있었고, 6년 전 결혼해 두 아이를 둔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