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넷플릭스 세상 속으로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 “넷플릭스 공개, 아쉬움보단 설렘” [MK★인터뷰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본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노을 기자

윤성현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사냥의 시간’이 숱한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공개됐다. 말도 탈도 많았지만 영화의 새로운 시도와 그 시작이 감독, 그리고 관객에게도 설렘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들과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의 숨 막히는 시간을 담아낸 영화다. 윤 감독이 2010년 독립장편영화 ‘파수꾼’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자 배우 이제훈, 박정민과 재회했다.

윤 감독은 지옥을 뜻하는 영단어 ‘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이 살기 힘들고 희망이 없음을 풍자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사냥의 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영화에는 그때 그의 치열한 고민과 갑갑한 현실이 장르의 외피를 입고 고스란히 투영됐다. 말 그대로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근미래, 꿈도 희망도 온데간데없는 청년들은 위험한 한 탕을 계획하지만 그로 인해 지옥도를 그린다.

매일경제

윤성현 감독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넷플릭스


윤성현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한국 영화계에 각인시킨 ‘파수꾼’과 전혀 다른 결이다. 극단에 몰린 청춘, 더 나아질 것 없는 일상이 이전과 상당 부분 닮아있지만 전작과 달리 드라마 요소를 확연히 줄이고 장르에 초점을 맞췄다. 디스토피아가 된 세상은 붉거나 퍼렇게 제시되고 총성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이하 윤성현 감독과 일문일답.

Q. ‘파수꾼’ 이후 10년 만의 장편이다. 여러 잡음 끝에 공개라 감회가 더 남다르겠다.

A. 윤성현 감독: 굉장히 우여곡절 끝에 공개가 됐다. 무엇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기 바라고,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다. 긴장과 불안함, 그리고 설렘이 복합적으로 든다.

Q. ‘사냥의 시간’은 돌비 애트모스로 제작할 만큼 사운드 디자인과 조명 등 영상에 굉장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안다. 극장 상영을 목표로 만든 영화인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한 아쉬움도 클 법 한데.

A. 윤성현 감독: 맞다. 극장 상영용으로 고민해서 만든 영화고 그에 대한 화법의 영화인 게 맞다. 그러나 넷플릭스라는 환경, OTT라는 환경으로 변화되어 가는 이 과정에서 ‘사냥의 시간’이 거기에 들어갔고 개인적으로는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도록 여러 국가에 공개되어 아쉬움보다 설렘이 더 크다.

Q. ‘사냥의 시간’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진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서 비롯됐나.

A. 윤성현 감독: 2016년도에 한창 ‘헬조선’이라는 어휘가 유행했다. 지금도 유효하고. 그때 지옥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려움을 정석적인 형태로 표현한 거다. 그렇다고 엄청난 주제의식이 아니라 세계관의 부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다만 이 영화는 사이언스는 아니다. 그건 굉장한 오해다. 내가 여행을 다니며 본 빈민가, 슬럼화 된 도시들, 경제붕괴로 인한 화폐가치 추락 등 그 기억을 떠올리며 이미지를 가져왔다. 또 나 역시 학창시절 IMF를 겪었던 기억, 상처들을 일부분 자연스럽게 녹이려 했다.

매일경제

윤성현 감독이 MK스포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넷플릭스


Q. 디스토피아 뿐만 아니라 어떤 세계관이 관통하는 영화는 그 매커니즘을 관객에게 설득, 납득시키는 게 중요하지 않나.

A. 윤성현 감독: 맞다. 공간이 설득력을 가져야지만 거기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동화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팀 버튼 감독처럼 만화적인 공간감이 될 수도 있고 리얼한 형태도 가능하다. 나도 만화적 형태로 했으면 좀 더 쉬웠을 수 있지만 리얼하게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그 효과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미술, CG에서 설득력을 갖기 바랐다.

Q. 시대 배경을 특정하지 않고 근미래로 설정했다. 그래서 그런지 총기 사용이나 화폐 등 여러 장치가 눈에 들어오더라. 근미래라는 설정에서 온 효과는 무엇인가.

A. 윤성현 감독: 감정적 배경을 비주얼화 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장치가 있지만 총기 마약 이런 요소들도 부각하고 싶었고 지옥도를 그리는 데 중요한 장치가 될 것 같았다. 처음부터 총기 영화는 아니었다. 예전에 남미 여행을 할 때 보니 화폐가치가 추락하고 심지어는 달러를 환전해서 가면 재환전이 안 된다. 한 마디로, 환전해가면 거기서 다 써버려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총기소리가 들린다. 길을 걷든 고속도로를 달리든 저 멀리서 총 소리 들리는 환경이다. 이 영화에도 그런 요소가 자연스럽게 붙어지고, 개인적으로 서부극을 좋아하니까 장르적인 장치들을 가지고 가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Q. ‘사냥의 시간’은 마치 1막, 2막이 있듯 전후가 분명하다. 앞쪽은 케이퍼 무비 같기도 하고 뒤쪽은 서스펜스가 상당한데 이 역시 의도한 건가.

A. 윤성현 감독: 의도한 부분이다. 이야기 안에서 작가로서 하고자 한 이야기, 장르로서 풀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옥도를 그리는 과정 속에서 우선 케이퍼적 요소를 선택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장르가 바뀌어 서스펜스로 전환이 되는 거다. 막판 총격전이나 싸움은 서부극을 투영했다. 장르의 변화를 의도했기 때문에 연출도 목적성에 따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매일경제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Q. ‘파수꾼’에 이어 현실감 넘치는 욕설이 대사에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시나리오에 다 명시되어 있던 건지 궁금하다.

A. 윤성현 감독: 시나리오에는 그 정도로 많은 욕설이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배우들과 캐릭터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각 인물이 자란 환경과 배경 등을 생각하며 배우들이 만들어낸 거다. 그들의 화법이랄까. 배우들도 의식하지 않은 순간 화법이 생겼고 본인들도 깜짝 깜짝 놀라더라. 테이크가 끝나고 모니터 할 때 ‘내가 욕을 이렇게 많이 했냐’고 할 정도로 화법이 되어 있었다. 욕설 대사는 의도된 애드리브가 아니라 캐릭터의 역사성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됐다고 할 수 있다.

Q. 종반부 준석(이제훈 분)과 한(박해수 분)의 클라이맥스에서 오는 긴장감도 상당하다. 그런데 정작 그 씬을 마무리 짓는 건 준석도 한도 아니고 다른 인물이다. 준석, 한의 대결 구도에 굳이 제3자를 넣어 씬을 마무리한 이유가 있나.

A. 윤성현 감독: 은유로 표현하고자 한 지점도 있다. 한이라는 인물 자체가 현실에서는 다양하게 투영될 수 있을 것 같다. 시스템일 수도 있고 여러 요소일 수도 있다. 준석이라는 인물이 도망가고 벗어나고 탈출하고 거기에 목적을 둔 인물이지 않나. 애초에 싸우려고 했던 인물이 아니니까 한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준석이 그 순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개인적으로 ‘운’이라고 봤다. 바라보는 시점 때문에 만들어놓은 형태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그 씬에 대해 어느 정도 힘 빠지게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매일경제

영화 ‘사냥의 시간’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Q. 일부에서는 속편을 염두에 둔 엔딩이라는 의견도 있다. 속편 제작을 생각한 마무리인가.

A. 윤성현 감독: 아니다. 속편 제작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엔딩을 연출한 것은 아니다.

Q. ‘사냥의 시간’은 장르물이긴 하나 궁극적으로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다. 감독으로서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있다면.

A. 윤성현 감독: 거창한 메시지를 가져가려고 한 것보다 청년 세대가 생존하는 공간을 은유적, 우화적 형태로 만들고자 했다. 문명의 발전에 대한 비판, 낙후된 세계 같은 시선으로 만든 건 아니다. 다만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친구들을 위해 글을 썼다. 영화 자체가 사회 드라마는 아니니까 그런 거창함은 아니고, 그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또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감정들이 강렬하고, 나 또한 그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곳을 벗어나서 천국이라는 곳에 왔다고 해서 과연 천국인가. 수많은 희생을 따르고 왔지만 과연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 sunset@mkculture.com

[ⓒ MK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