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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뉴스분석] 정보 사대주의에 휘둘린 ‘김정은 인포데믹’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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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만에 공개활동… CNN 받아쓴 언론들 중태설 키워

北의 폐쇄성과 ‘김정은 건강=한반도 정세 위험변수’ 확인
한국일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사진은 준공식 현장에서 자신감에 찬 김 위원장의 모습. 평양=조선중앙TV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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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 행사에서 자취를 감춘 지 20일 만이다. 그 사이 김 위원장 건강을 둘러싼 각종 미확인 설(說)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증폭됐다. 심혈관계 시술설에서 심장 수술설, 중태설, 뇌사설, 사망설까지 번지는 동안 김 위원장은 내내 침묵했다.

조선중앙TV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1일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장면을 2일 일제히 보도했다. 영상과 사진 속 김 위원장은 건강한 모습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외관상으로는 잠행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청와대는 3일 “김 위원장이 그간 수술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시술을 받은 가능성도 없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신변 이상으로 인한 ‘한반도 리스크’를 당장 피하게 된 것은 희소식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을 둘러싼 소문과 보도가 자칭 ‘권위자’ 혹은 익명의 ‘소식통’의 입을 타고 확대 재생산된 과정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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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절(5·1절)이었던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TV가 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이동용 카트에 앉아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TV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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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공개된 영상을 보면, 김 위원장은 수많은 인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상에 올라 혼자 준공식 테이프를 잘랐다. 이어 공장 부지를 걸어서 시찰했고, 담배도 피웠다. “김 위원장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태영호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지성호 미래한국당 국회의원 당선자) 등의 주장과 배치되는 모습이었다.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의 건재함을 담은 현장 영상을 평소보다 상세히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은 지난 달 21일 미국 CNN 방송의 긴급 보도 이후 전세계로 확산됐다. 같은 달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주재 이후 김 위원장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겨우 열흘 밖에 안 된 상황이었다. CNN은 “김 위원장이 수술 후 중태에 빠졌다는 첩보를 미국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달 20일엔 국내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가 김 위원장의 심혈관계 시술 의혹을 제기한 터였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즉각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일축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일부 언론 속 김 위원장은 이미 중증 환자였다.

전문가들은 “‘정보 사대주의에 휩쓸린 열흘’이었다”고 진단했다. 데일리NK 보도는 국내에서 별다른 파장을 낳지 못했지만, CNN을 비롯한 등 해외 ‘유력’ 언론들이 보도하자 국내 언론들이 무분별하게 ‘받아쓰기 보도’를 해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3일 “북한이 워낙 폐쇄적 체제이다 보니 해외 언론ㆍ전문가들이 오히려 북한 정보 파악에 어두울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해외 유명 언론들이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다수 언론들이 정보 신뢰성을 따지지 않고 편승 보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도 “북한 관련 보도를 할 때는 불가피하게 비공식 정보라인에 의존하는 현상이 있는데 CNN, 로이터 같은 언론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며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기 위해 ‘객관적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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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검은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이 공장을 둘러보며 활짝 웃고 있다. 평양=노동신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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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인포데믹(Infodemicㆍ거짓 정보가 감염병처럼 번지는 현상) 양상으로 번지는 과정에서 북한 사회의 폐쇄성이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신변은 ‘최고 기밀 사항’이다. 그야말로 극소수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로, ‘목숨’을 걸지 않고는 정보 유출을 시도하기 어렵다.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도 북한 관영매체가 보도하고서야 알려졌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만 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감염됐다 회복하기까지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만 북한에게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한은 국제사회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여전히 강한 탓에 각종 억측이 쌓인 뒤에야 중요 정보를 공개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 한반도 정세의 ‘대형 위험 변수’라는 점도 이번 사태를 통해 증명됐다. 김 위원장은 북한 체제의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지도자인 데다, 핵 통제권을 쥐고 있다. 그의 신변과 한반도 안전이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30대인 김 위원장이 고도 비만인 데다 유전으로 인한 심장병 위험을 안고 있어 건강 관련 의혹 제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보수 진영에서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홍민 실장은 “김 위원장 신변 관련 변수가 또다시 발생하면 국내 이념 갈등 구도가 반복되고,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혼선도 빚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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