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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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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밀입북 비공개 논란 휩싸인 외교부, 심의절차 강화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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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심사위원 수 7→10명까지 늘려

투명성 높이는 등 심사 강화 목적

정치적 편향성 논란 소지는 여전

"여야 합의 인사로 구성된 감독위원회 설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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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의 밀입국 사건과 관련된 포스터. /조선일보 DB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30년 전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도 당대 최대 관심사였던 ‘임수경 밀입북’ 문서는 비공개 처리해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던 외교부가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외교문서 공개 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예비심사 위원의 최대 가능 인원수를 기존의 7명에서 10명으로 3명을 늘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6일 법제처에 따르면, 외교부는 지난 4일 “30년이 경과한 외교기록물의 공개 심사 절차를 강화하고 심의 대상 문서량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이에 필요한 사항을 개정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교문서공개에 관한 규칙’의 제7조 제1항인 ‘예비심사위원 수’를 ‘5명 이상 7명 이하’에서 ‘5명 이상 10명 이하’로 변경한다”고 했다. 가용 예비 심사위원 인원수를 대폭(42.8%) 증원해 심사 대상 문서의 내용을 꼼꼼히 살피고 공개 여부도 더 철저히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합의 인사로 구성된 ‘감독위원회’ 설치 필요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정치적 편향 문제를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법령 개정은 이번에도 추진되지 않았다. 앞으로 이번과 비슷한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외교문서 공개와 관련한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현 심사위원회를 감독할 상급 위원회를 신설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여야가 합의한 인사로 구성된 ‘감독 위원회’를 통해 현 심사위원회의 외교문서 비공개 여부 결정을 최종적으로 심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 예비심사 위원은 외교부 측에 이와 비슷한 개선안을 비공식적으로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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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2일 평양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선 임수경. / 임수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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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외교문서 심사는 전직 고위 외교관 다수와 극소수의 외부 학자로 구성된 ‘예비 심사위원회’, 그리고 외교부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대변인 등 외교부 주요 간부를 위원으로 하는 ‘외교문서공개심의회(심의회)’가 맡고 있다. 예비 위원 5~7명이 수개월간 20여만쪽의 외교문서를 검토해 1차적으로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이를 ‘심의회’가 재검토해 최종적으로 합의로 결정한다. 집권 여당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직 외교부 간부들로 심의회가 짜인데다 이들이 예비 위원들의 선정 권한도 쥐고 있어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30년 전 외교문서의 공개 여부를 결정하면서 야권에 불리한 사건의 문서는 공개하고, 여권에 불리한 것은 ‘구체적으로는 말 못하지만 지금도 예민한 내용이 있어서’라는 ‘이현령비현령’식의 이유를 들어 비공개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외교부는 160쪽에 달하는 임수경 밀입북 관련 외교문서는 비공개하면서 일부 친북 성향의 국가가 임수경 구속 사안에 대해 한국 측에 이의 제기하는 상황이 생생하게 담긴 외교문서는 공개해 논란을 키웠다. 외교부 측은 임수경 관련 문서 가운데 현재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 많아 비공개했다는 이유도 댄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 가운데는 일부 동유럽 국가가 수교 조건으로 우리 측에 경제적 혜택을 바라고,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이런 상황을 사전에 우려해 주저했다는, 지금 봐도 ‘민망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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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월 30일 외교부가 공개한 1989년도 생성된 외교문서 24만쪽 가운데 하나. 자메이카의 한 친북단체가 한국 공관에 여러 단체가 임수경 등에 대한 석방요구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며 약 50명의 석방요구 서명이 첨부된 서한을 보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외교부는 이렇게 임수경 밀입북에 대한 처벌에 대해 해외 친북 세력이 이의 제기하는 상황이 담긴 외교문서는 공개됐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의 문서 약 160쪽은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비공개 처리해 공정성 논란을 불렀다.


아키히토(明仁) 일왕(天皇·덴노)이 노태우 정부에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일본 보수 세력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등의 구체적인 외교 비사도 공개됐다. 일본에서 일왕과 관련된 내용은 매우 민감하게 여겨진다. 강제 징용 피해자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에 빠진 현 상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교 문서였다. 유독 임수경 밀입북 사건에 대해서만 ‘현 외교에 영향을 줘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비공개 결정한 데 대해 각종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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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전 의원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임 전 의원의 1989년 밀입북은 당시 전대협 의장이던 임 전 실장이 기획 주도한 것이다. /조선일보 DB



◇외교부 ‘거짓 해명’ 논란도 불거져

외교부가 지난 3월 30일 1989년도에 작성된 외교문서 24만쪽을 공개하면서 국민적 관심 사안인 ‘임수경 사건’ 문서를 제외한 사실은 물론 그 이유도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전직 외교부 차관은 “사실 임수경 사건은 지난 30년간 관련자들의 증언과 검찰 수사 결과, 법원 판결문 등을 통해 그 전말이 알려질 만큼 다 알려진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굳이 비공개했다면 그렇게 결정한 사실과 이유를 투명하게 밝혀 이해를 구했으면 됐을 일이었다”고 말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다 언론에 적발돼 의심을 사고 논란이 더 커지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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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은 임수경이 평양에 가기 전 찍어둔 졸업사진으로 책받침을 만들어 임수경 수감 당시 대학생들에게 판매해 히트를 쳤다. 2001년 8·15 민족공동행사에 참석했을 때 임수경에게 발급된 인천발 평양행 대한항공 티켓(오른쪽 아래). / 임수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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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불거진 직후 외교부의 ‘말 돌리기’식 해명도 문제로 꼽힌다. 취재진의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둘러대기식으로 대응해 의문만 더 키웠다는 것이다. 지난 3월 30일 오후 외교부 당국자는 ‘왜 임수경 문서는 쏙 빠졌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비밀 방북했는데 외교문서가 있을까? (문서가) 생성됐나 모르겠다"고 했다. 문서가 없을 수도 있다는 투였다. 성의없는 답변에 기자들이 '없다는 건가, 있는데 공개 안 한다는 건가'라고 추가 질문을 계속하는데도 이 당국자는 "(임수경이) 방북해서 서울 돌아왔지 않느냐”고 했다. “외국 정부와 나눈 대화가 문서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정확히 사실 관계를 확인해 취재진에 설명하지 않고, 모호한 설명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수 시간 뒤 언론의 취재로 1989년도에 생성된 '임수경 밀입북' 문건이 160여쪽에 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외교부 당국자가 이날 최대 관심사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 관계와 관련해 결과적으로 ‘거짓 해명’한 셈이다. 이번 외교문서 공개 심사에는 조세영 1차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인철 대변인 등 주요 간부가 참여했다.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외교부 당국자도 충분히 임수경 문서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도 ‘사실 해명’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일각에선 외교부가 서툴게 ‘정권 코드’에 맞추려다가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다 오히려 임 전 실장 등 정권 주요 인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더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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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왼쪽 둘째) 외교부 장관이 지난1월 인천공항에서 취재진을 질문을 받으며 출국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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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방북 사건’은 1989년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당시 한국외대 불어과 학생 임수경씨가 북한을 무단 방문해 당시 남북한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다. 북한은 1989년 2월, 7월 1일로 예정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하면서 조선학생위원회 명의로 한국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 초청장을 보냈다. 이 초청장은 조선학생위원회, 조선(북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 국토통일원(현 통일부)을 거쳐 전대협에 전달됐다. 이에 당시 임종석 전대협 제3기 의장은 '평양축전 참가 준비위원회'를 두어 축전 참가를 준비하면서 임수경의 평양 방문 건을 추진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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