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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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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지운 봄을 지나…장터엔 여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지극히 味적인 시장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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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오일장

경향신문

5월의 남원 인월장터에는 고추, 토마토, 오이 등의 모종을 팔고사는 이들이 많다. 가방 멘 할머니 등에 얌전히 있는 토마토 모종이 눈에 띄었다. 여름에 놀러 올 손주를 위한 찰토마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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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경상도 가로지르는 인월장
고추·토마토 등 텃밭용 모종 많아

코로나19가 2020년 봄을 지웠다. 우리네 일상 또한 멈췄다. 2월 말, 원고까지 넘긴 여수 오일장 기사가 허공으로 날아가고는 3월과 4월이 코로나 뉴스와 함께 지나갔다.

다시 시작하는 5월,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전북 남원으로 떠났다. 봄은 떠날 준비를 마쳤지만 장터에 나온 나물에 발길을 잡히고 있었다. 조생 양파는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오랜만에 구경 나선 장터에는 봄과 여름이 교차하고 있었다.

출발할 때 일정은 1박2일이었다. 5월이면 지리산 자락의 정령치에서 은하수를 마음껏 볼 수 있거니와 8일은 인월장, 9일은 남원장을 볼 생각이었다. 새벽을 달려 아침에 남원 인월면에 도착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8일 저녁부터 100㎜ 넘는 비가 내린다는 예보였다. 마구마구 꼬이는 일정 걱정보다 비 소식이 반갑다. 봄철에 내리는 비는 ‘금’이다. 가을걷이를 위해 봄철의 풍부한 강수량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을에 내리는 비는 양과 상관없이 ‘똥’ 취급이다. 아무짝에도 소용없고 수확하는 농산물의 단맛만 떨어뜨린다. 겨울 보낸 양파를 수확하더라도 봄은 씨 뿌리는 계절. 작은 인월장터에 모종 팔고사는 이들이 많다. 불난 호떡집이 한 수 접고 들어올 정도다. 고추, 토마토, 오이 등등 다양한 모종이 선을 보인다. 대부분 텃밭용이다. 농사지어 팔 것은 따로 종묘상을 통해 대량 구매한다. 여름을 보내며 이웃과 나눠 먹거나 반찬용으로 쓸 것은 장터에서 그때그때 몇 천원 내로 산다. 가방 멘 할머니 등에 얌전히 있는 토마토 모종이 눈에 띄었다. 어쩌면 여름에 놀러 올 손주를 위한 찰토마토가 아닐까 싶다. 인월면은 여느 면소재지처럼 작다. 조금만 걸어도 상점가가 금세 끝나지만, 인월면은 고려시대부터 중요한 역참이 있던 곳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며 장이 서는 곳이 화개장터만은 아니다. 인월장도 그렇다. 남원시 인월면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경상남도 함양이다. 인월의 음식에서 살짝 경상도 맛이 나기도 한다.

남원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광한루 그리고 추어탕이 참으로 유명하다. 남원을 찬찬히 살펴보면 맛난 것이 많다. 필자처럼 일 년에 서너 차례 가는 사람이야 훤히 알지만 말이다. 남원은 지리산의 북쪽 편이다. 노고단을 가기 위한 성삼재휴게소, 뱀사골, 정령치가 남원에 있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 있기에 생각보다 해발고도가 높다. 추어탕을 먼저 시작했다는 운봉읍은 평지처럼 보여도 해발고도가 500m 전후다. 지대가 높다 보니 근래 들어 남원 전역에서 사과 농사가 활성화되고 있다. 필자가 2000년도 초반 남원을 다닐 때는 사과밭이 많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경북 사과가 전국 사과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경북, 경남, 충북 등지보다 생산량이 적지만 지리산 권역의 남원을 비롯해 덕유산 권역의 장수, 진안, 무주에서 맛 좋은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아침과 저녁나절이면 맛있는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나락의 살도 찌우지만 아카시아꽃이 질 무렵 계곡에 하얀 꽃이 떼로 피게 한다. 꽃이 떼로 핀다고 해서 이름도 때죽나무다. 때죽나무에서 채취한 꽃꿀은 향이 부드럽다. 진하지 않고 여린 향이지만 여운이 상당히 길다. 계절에 따라 벚꽃꿀, 감귤꿀, 아카시아꿀, 때죽꿀. 싸리꿀, 엄나무꿀, 밤나무꿀, 피나무꿀이 나온다. 양봉하시는 분들은 벚꽃꿀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입맛은 개인의 것, 필자는 때죽꿀이다. 지리산 한봉영농조합(063-635-3470).

노고단에서 뱀사골로 부는 바람은 산내면 산자락에서 짭조름한 바람이 된다. 고향 남원 산내면을 떠나 요리를 배운 양재중 셰프가 고향으로 돌아와 봄과 가을에 숭어알로 어란을 만들고 있다. 숭어알을 소금에 재웠다가 말린다. 말리는 과정에서 전통 방식인 참기름 대신 문배주를 발라 맛이 산뜻하다. 찬해원(070-4823-1747).

최근에는 서울 도심에도 공장이 생길 정도로 알려진 저온 압착 참기름도 남원이 거의 시조 격이다. 남원시 운봉읍과 일대의 참깨를 저온에서 살짝 볶아 짜낸 참기름은 때죽꿀처럼 향이 여리다. 참기름의 향이 다른 식재료의 향을 침범하지 않고 밑에서 튼실한 받침대 역할을 한다. 맛있는 참기름은 코가 먼저 반응하지 않는다. 혀끝에서 향을 느끼는 참기름이 맛있는 것이다. 지리산처럼(063-636-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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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욱이 들어간 어탕의 맑은 국물은 잡내 없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왼쪽). 토종닭을 넣고 끓인 뭇국은 소고기뭇국보다 감칠맛과 구수함이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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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광한루 주변의 추어탕 거리
산초 대신 제피 넣은 국물이 별미

남원 광한루 주변에는 추어탕거리가 있다. 저마다의 맛을 뽐내는 곳이 많다. 필자는 시내의 추어탕보다는 인월면에는 있는 어죽집이 입에 더 맞는다. 미꾸라지로 만들면 추어탕, 다른 민물고기로 끓이면 어탕이다. 가을 미꾸라지로 끓였기에 추어탕이라 했지만 이제는 추어탕과 어탕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얼큰한 국물에 제피나 후추까지 넣고 먹으면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산내면 어탕은 추어탕이나 다른 곳의 어탕과 모양새가 다르다. 일단 국물이 맑은 된장국과 비슷하다. 아욱을 넣고 끓여 낸 맑은 국물은 잡내 없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맑은 국물을 맛본 다음 취향껏 제피며 다진 청양고추를 넣고 매운맛을 조절해서 먹는다. 어탕에서 제피가 빠지면 섭섭하다. 금강변 주변에서 어탕을 먹으면 제피가 없어서 맛이 심심하다. 제피는 산초처럼 아린 맛이 난다. 산초와 다른 점은 싱그러운 신맛이 있다는 것. 제피를 넣는 순간 국물이 두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어탕은 밥과 국수를 고를 수 있는데 밥이 낫다. 두꺼비집(063-636-2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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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는 비계의 수분 함량이 적어 쫄깃하다. 돼지고기를 구울 때 표면이 갈색으로 변할 때가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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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흑돼지 농장에서 길러지는
한국 고유 돼지 품종인 ‘버크셔K’
쫄깃쫄깃한 비계의 식감이 일품

6년 전 남원의 흑돼지 농장을 간 적이 있다. 흑돼지는 영국 원산지인 버크셔 품종이었다. 버크셔는 18세기 미국으로 갔다가 남원에 정착해 버크셔K가 되었다. 버크셔 뒤에 ‘K’가 붙는 까닭은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한국 고유종으로 등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99.99%의 돼지는 대부분 외래종이고 종자는 수입하고 있다. 한국 고유종으로 등록된 것이나 육종한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 버크셔K를 비롯해 우리흑돈, 난축맛돈 등이 대표적이다. 흑돈 계통의 특징은 비계가 맛있다는 것이다. 돼지고기 비계의 식감은 말랑말랑하다. 버크셔는 비계의 수분 함량이 적어 쫄깃하다. 살짝 구우면 고기 씹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씹는 맛이 좋다. 비계가 맛있으니 고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돼지고기를 구울 때 표면이 갈색으로 변할 때가 가장 맛있다. 소고기로 치자면 미디엄레어에서 미디엄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고기는 탄력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다. 육즙이 빠져나가기 일보 직전이라 씹는 순간 육즙이 터진다. 그 시점을 벗어나면 육즙은 빠져나가고 고기 표면은 짙은 갈색이 된다. 고기를 먹다가 식초를 청해 된장에 살짝 치고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고기를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팁이다. 지리산 고원 흑돈(063-625-3663).

남원서 맛볼 수 있는 토종닭 뭇국
소고기뭇국보다 더한 감칠맛 뽐내

몇 년 전에 다큐멘터리 촬영 덕에 맛본 곳이다. 맛보면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만든 맛이었다. 소고기로 국을 끓일 때 무를 넣는다. 구수한 소고기 향과 시원한 무의 궁합은 춘향과 몽룡만큼이다. 소고기 대신 토종닭을 넣고 끓이면 궁합이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지지 않는다. 토종닭 특유의 감칠맛과 구수함이 소고기뭇국과는 사뭇 다른 맛을 낸다. 게다가 소고기뭇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씹는 맛이 있어 한층 더 맛있다.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 낸 닭고기 뜯어 먹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토종닭으로 하는 대표 요리가 닭볶음탕, 백숙, 구이다. 전국의 산과 계곡에서 맛볼 수 있다. 토종닭으로 끓인 뭇국은 남원에서 맛볼 수 있다. 보기에는 닭과 무를 넣고 끓인 단순한 방법으로 만든 음식이지만 단순한 방식이 맛을 끝까지 끌어낸다. 맛보고 나서 생각날 때 가끔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끓이면 소고기뭇국은 ‘따위’가 된다. 슈퍼를 같이하는 식당이다. 음식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니 한 시간 전에 예약하고 가면 좋다. 내촌식당(063-626-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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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 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4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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