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중되는 편견과 무관심...일상인 주변의 동정과 놀림
경기도의 한 다문화 조손가정, 혜성이네 할머니(64)의 손. 홀로 손주들을 키우고 있는 할머니는 식당일을 하며 고단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어 늘 손이 거칠다./사진=이주형 기자 |
아시아투데이 우종운·이주형 기자 = 9살 지은이(가명, 9)네의 하루 해는 길다. 고단한 삶만큼이나 무겁고 느리게 흘러간다. 지은이는 친할머니(83), 동생(7)과 함께 전라도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4년 전 지은이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 얼마되지 않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어머니도 집을 나갔고, 지은이와 동생은 오롯이 할머니 품에서 자라고 있다.
집에서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던 아버지가 쓰러진 뒤로는 아버지에 대한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 수당, 할머니에 대한 노령 수당이 지은이네 수입의 전부다. 관절염으로 무릎이 좋지 않은 할머니가 폐품 수거로 월 10만원가량의 비고정적 수입을 벌어오고 있지만 이것으로 아버지의 병원비와 생활비, 교육비 등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100만원 안팎인 지은이네 한 달 수입으로 세 식구가 살기 빠듯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줄어들어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졌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어머니가 일을 시작하면서 정부에서 아버지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따로 살고 있는 지은이 어머니는 지은이네 집에 별도의 양육비를 지급하고 있지 않지만 정부는 법적으로 아버지와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은이 어머니가 경제활동 중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기초생활수급비를 줄였다.
그래도 지은이는 어머니가 밉지 않다. 오히려 1년에 한두 번씩 어머니가 지은이를 찾아와 맛있는 것을 사주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줘 행복하기까지 하다. 다문화 조손가정은 일반 조손가정 보다 훨씬 더 많은 편견에 시달린다. 주변의 동정과 놀림도 일상이다. 그러나 요즘 지은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날로 악화돼 가고 있는 할머니의 건강과 정부의 무관심이다.
고령인 할머니의 무릎과 허리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지은이는 할머니가 입원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마저 입원하게 될 경우 이미 입원해 계신 아버지에 더해 두 배로 들 병원비 때문이라고 미뤄 짐작하고 있지만, 할머니는 “애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게 아니다”며 자세한 말씀을 해주지 않는다.
정부의 무관심도 지은이의 설움을 배가시킨다. 정부는 다문화 조손가정인 지은이네 집을 서류상의 ‘숫자’로만 볼 뿐, 직접 지은이네 집을 찾아오거나 고령의 할머니를 대신할 별도의 활동가를 지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민간단체인 굿네이버스에서 주기적으로 지은이네 집을 찾아 살펴보고 있다.
경기도의 혜성이(가명, 9)도 다문화 조손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혜성이와 친할머니(64), 큰아버지, 혜성이의 사촌인 큰아버지의 아들·딸 등 모두 5명은 지난해 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소개로 방 2개짜리 LH전세주택에 입주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혜성이의 큰어머니와 어머니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아시아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한국에 잘 적응하는데 한국 국적을 받고 나면 자유롭게 살고 싶어 집을 나간다. 정부에서 한국 국적을 빨리 안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혜성이와 사촌들은 학교에서 가족을 그릴 때면 항상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 모습만을 그린다.
혜성이 아버지는 사업실패 후 연락이 끊겼다. 큰아버지는 가끔씩 일을 다니지만, 주 수입원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나온다. 할머니 혼자 손주 셋을 키우면서 식당까지 운영하기란 쉽지 않지만, 식당이 사실상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라 함부로 그만둘 수도 없다. 할머니의 거칠고 거친 손은 이 고달픈 삶에서 비롯됐다.
혜성이 할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다. 오래전 유방암이 발견돼 수술받은 적이 있는 할머니는 2년 전엔 난소암이 발견돼 또 한 번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오늘도 혜성이와 사촌들을 위해 훌훌 털고 일어선다. “할머니가 오래 살아서 나를 돌봐달라”는 혜성이의 평소 외침은 할머니를 부담스럽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힘이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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