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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우리는 잘 있다고, 말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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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시적 순간은 삶에 대해 말하는 순간의 목소리를 닮아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며 빚어가는 모양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날이 있다. 평범한 일상이 낯설게 발현되는 순간을 시적 순간이라고 말한다면, 지금 여기 펼쳐지는 낯선 일상에서 이게 삶이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요즘 자주 생긴다. 그러니까 코로나가 집어삼킨 요즘, 많은 이들의 하루가 너무 예전과 달라 낯설어진 상태에서 시적 순간을 발견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여러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가령, 예전의 일상을 그리워한다든지, 지금을 이겨내려는 용기라든지, 다른 이들을 위로한다든지, 이것이 삶이구나 한다는 등의 감정과 생각 같은 것이다.

날이 갈수록 동네 곳곳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구급차에 실려 가고, 하루에도 수 없이 자주 위급한 경적 소리가 울린다. 죽음이 곁에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은 더 자주 창문을 여닫았고, 오후가 되면 죽은 이를 위해 바치는 교회의 종소리도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우리들의 삶은 점점 더 희미해 보였다. 언론에서는 코로나의 기세가 조금씩 꺾여가고 있다고 하나, 요즘의 일상은 여전히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떤 용기와 믿음을 서로 나눠 가졌다. 버티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하는 의지.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를 잘 지키며 걷고, 지인이라도 마주치면 멀리서 평소보다 더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화장지 한 팩과 밀가루를 운이 좋아 얻게 된 날이 있었는데, 지인이 우리를 위해 집 앞에 두고 다녀갔던 일도 있었다. 우체부는 더 분주해졌고, 그의 손에 들린 엽서와 편지들에는 “Bleiben Sie Gesund” 그러니까 그것은 “건강하길 바랍니다” 라고 전하는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각자가 서로의 하루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계속 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상황이 감사하고 귀한 것임을 느끼는 나날이다.

현수막이나 커다란 종이에 “우리 모두는 잘 있어요” 라고 써서 창문이나 울타리에 붙여놓고, 아이들은 ‘기적의 돌멩이’를 만들어 초등학교 담벼락부터, 집 앞 현관, 친구의 우체통 속, 골목 곳곳에 ‘빛나는 돌’을 놓아둔다. 꼭 돌멩이에 뿐만 아니라 ‘나비’ ‘무지개’ 등과 같이 희망적인 모티브가 되는 사물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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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독일의 한 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놓여진 ‘기적의 돌’, 본인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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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 ‘건강하세요’ 라고 적은 돌, 본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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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여전히 그리워한다고, 너희들 잘 있지, 하고 묻는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거다. 이런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문득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뭉클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하다. ‘삶’ 구석 구석 존재하는 시적 순간을 느끼는 거다. 뭉근한 무언가가 삶을 조금씩 만져주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삶의 구석구석을 비로소 보게 된다. 나의 지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 한다거나, 어떠한 현상을 보고 듣는 순간 무언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아마 그러한 감정은 새삼스러울 거고, 잊고 지낸 어떤 기억들처럼 아득하고 따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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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우리는 너희들이 그리워!” 라고 붙여진 유치원 울타리, 본인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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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 코로나로 인한 휴관 기간 동안에 유치원 입구에 손가락 지문을 찍고 갈 수 있게 설치해 놓은 판넬, 본인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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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상황 속에서 우리들의 행위는 지금을 말하는 문화가 된다. 평범했던 무엇이 새삼스럽게 아름다워 보이고, 거기서부터 생각지도 못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 어떤 용기가 솟아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의 순간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거다. 그러는 동안 우리 각자는 까마득한 저편에 둔 일상을 생각할 것이다. 힘 없이 흘러가는 듯한 낮과 밤 속에서 각자의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고, 삶의 목소리들이 겹쳐 흐르는 장면을 가슴 속에 오래오래 맺히도록 잡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지금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 될까? 라며 서로에게 묻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지금을 버틸 수 있던 용기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서로의 약속이다. 우리들 모두가 붙잡고 있었던 목소리는 계속해서 무너져가던 일들을 다시 세울 희망이 될 것이다. 삶이 닫히고 열리고, 무너지는 순간의 장면에는 언제나 조금의 상상과, 용기와, 희망과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순간과 낯설게 마주해 본다면, 지금 각자의 시적 순간 속에서 특별한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기적의 돌멩이든, 무지개 그림이든, 더 자주 묻는 안부 인사든, 각종 SNS에서 퍼지는 캠페인처럼, 시적 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지 삶을 잘 살아 낼 지도 모르겠다.

[박소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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