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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부부 건축가의 세상짓기] 불안이라는 이름의 종교 / 노은주·임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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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은주·임형남 ㅣ 가온건축 공동대표

가끔, 교육과 부동산은 우리나라에서 현대에 생겨난 두 개의 신흥종교라는 농담을 하곤 한다. 더군다나 그 신앙심은 기존의 종교보다 더욱 신실한지라, 계층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열심히 매달리고 충실히 따른다. 사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이긴 하지만 무척 뒷맛이 씁쓸하다. 왜냐하면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이 낙오되기 싫어 애절하게 올라타는 마지막 피난 열차처럼, 그 종교의 대열에 반드시 들어가려 애쓴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거기 매달리는 열정에 비해 성공의 확률은 무척 낮다. 오랜 시간과 많은 희생이 전제되어야 하는데도, 교육과 부동산에 대한 열망은 사람들 심리에 깊이 박혀 있는 불안을 동력으로 점점 힘이 강해진다. 사실 그 불안은 아직 겪지 않은 미래에 대한 것이고, 자신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주입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 지을 때도 그런 불안 때문에 과잉 방어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외부의 냉기나 더위를 차단하는 수단이 되는 단열에 대한 불안이 대표적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별다른 단열 대책 없이 지은 집에서 살며 겪었던 기억과 연료비에 대한 불안이 겹쳐지며 우리나라의 단열 기준은 지나치게 강화되었다. 창문은 적외선이 차단되는 로이유리(Low-E:low-emissivity)를 삼중으로 달아야 하고, 단열재는 해가 갈수록 두꺼워진다. 중부지방 단열재 기준은 20㎝ 이상의 두께인데 그것도 등급이 낮으면 더 두꺼워야 한다. 지역별 혹은 지붕·외벽·바닥 등 부분별로 두께를 일일이 정해놓아서, 소비자의 선택 여지는 계속 줄어든다. 심지어 법규를 충족하는 제품의 개발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수입 자재를 써야 하는 경우까지 생기다 보니, 지금 기준으로 지은 집은 마치 보온밥통 같다.

물론 집을 튼튼하게 열 손실이 적도록 짓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과잉이고 모든 이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는 데 있다. 일정 등급 이상이면 가능하다는 선만 정해놓아도, 좀 더 따뜻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나 시원한 집 안 공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각자 알아서 정하면 될 텐데 그럴 여지가 없다. 단열 문제는 두께도 중요하지만, 사실 공사하는 사람의 기술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 단열재 사이에 틈이 없어야 하고, 창문 주위나 재료가 만나는 부위에 생기기 쉬운 열교(熱橋)도 예방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막연한 불안은 그렇게 실체화된 규제와 비용으로 현실화된다. 그것으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생기고,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불안은 해결되지 않고 다시 몸집을 키운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넘어서려면 불안으로 우리를 선동하는 목소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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