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3 (월)

[세상읽기] 21대 국회의 재정 과제 / 우석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우석진 ㅣ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역대 최악의 국회로 평가되는 20대 국회가 곧 막을 내린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고, 범여권을 형성해 공직선거법,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민생이나 경제를 위해 입법 성과를 거둔 것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국회와의 관계가 순탄치가 않아 개혁적 입법 대신 정부 내 시행령 개정을 통해 성과를 내려고 했던 것은 못내 아쉬웠다.

이번 21대 국회는 코로나19 사태와 떨어져 생각하기 어렵다. 선거 과정에서도 코로나19 사태가 영향을 많이 주었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취약점이 많이 드러났다. 특히 재정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입법 과제들이 대두되었다.

최우선으로, 우리 국가채무를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입법이 필요하다.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수준 결정에 있어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허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매우 아쉽다. 지난주 발표된 대로 4월 일자리가 2월 대비 100만개 이상 사라진 것을 생각해보면 재정건전성 논의는 정말 허망했다. 공식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재정 당국자에게는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이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50% 혹은 60%의 국가채무비율이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최후의 선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통화가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과 국가채무 수준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기축통화국” 논리다.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서게 되면 외국 자본들이 급속도로 떠날 것이고 1998년에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를 다시 겪을 것이라는 우려다.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보건복지 지출의 자연 증가분 15% 정도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은 45%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60%라는 수준이 말이 되는지 본격적으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아 전세계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지디피 대비 2%대의 다소 소극적인 재정지출을 편성한 나라부터, 미국처럼 지디피의 11% 정도에 이르는 재정 충격 패키지를 편성한 나라도 있다. 동시에 국가채무비율의 분모가 되는 지디피가 상반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에서의 국가채무비율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다. 우리의 국가채무비율이 증가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지 않기 때문에 국가위험을 과대포장할 필요가 없다. 다만 ‘뉴노멀 시대’에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국가채무 수준을 재평가하고, 입법을 통해 재정준칙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허용 범위에 대한 규칙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없어 이번처럼 경제 관료에게 멱살 잡혀 끌려다니며 시간을 허비하게 된 것이다.

다음 과제는 복지국가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세 로드맵을 세우는 것이다. 지난 몇년간 사회보건복지 관련 지출은 꾸준히 늘어왔다. 또한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경제 및 사회적 불평등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코로나19 전파를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소득 감소가 모든 계층에 골고루 미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소득 계층일수록 재택근무가 가능한 데 반해, 저소득층일수록 팬데믹에 대한 반응이 더디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충격이 저소득층에 집중적으로 전달되게 된다. 코로나 이후 불평등 완화를 위한 국가 재정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재정운용의 기본은 일시적 재정 소요는 국채로, 장기적 소요는 조세로 충당하는 것이다. 지난 3년간 사회보건복지 지출은 다른 지출보다 배 이상 빠르게 증가해왔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조세 수입은 그렇지 못했다. 핀셋 증세라는 명목으로 최소한의 증가만 꾀했을 뿐, 폭발하는 복지 수요에 걸맞은 증세에는 소극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증세 없이 복지국가로 간다는 것은 허언에 가깝다. 21대 국회에서는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확립하는 입법을 완성시켜야 한다. 근본적인 조세 개혁을 통해 세대간 계층간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는 180석에 가까운 거대 여당이 만들어졌으니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입법 성과를 내줄 것을 기대해본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시간극장 : 노무현의 길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