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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엔카 아류라고? 음악인류학자가 말하는 ‘트로트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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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손민정 한국교원대 교수는 지난 4일 충북 청주 한국교원대의 연구실에서 이뤄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세계음악을 접하자 비로소 트로트의 가치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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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트로트 열풍이다. 한때 ‘성인가요’로 불리던 이 장르는 이제 직장인의 애환이라는 ‘시대정신’까지 폭넓게 담아내는 중이다. 부모님이 챙겨보는 미스·미스터트롯을 흘긋흘긋 보던 ‘밀레니얼’ 딸은 둘째이모 김다비의 신곡을 듣자 무릎을 탁 치게 됐다. “주라주라주라 휴가 좀 주라~” “가족이라 하지 마이소, 가족같은 회사,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

“우리 진짜 솔직하게 한번 얘기해보자, 하는게 트로트거든요. 드디어 가면을 벗어던지는 직설적인 문화가 대세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트로트에 덧입혀진 편견도 이제 많이 없어진 것 같고요.” 손민정 한국교원대 교수(49·음악교육)는 최근의 열풍이 반가운지 묻자 이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장윤정과 박현빈이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던 2000년대 후반 자신의 연구결과를 모아 <트로트의 정치학>을 썼다.

돌아보니 트로트는 언제나 일상에 있었다. 촌스럽지만 그래도 흥이나는 건 어쩔 수 없고, ‘흘러간 옛 노래다’ 할라치면 히트곡이 나왔다. 트로트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았을까. 지난 4일 청주 한국교원대 연구실에서 손 교수와 인터뷰한 내용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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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트로트 가수 선후배인 주현미와 장윤정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정지윤 기자


■ 100년의 몸부림

1920년대 ‘유행가’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수난에 수난을 거듭하며 몸을 바꿔왔다. 1960년대 이미자, 남진, 나훈아 등 거장이 대거 출현하며 정형화됐다. 이후 록, 포크, 민중가요 따위와 비교되면서 ‘저속하다’는 취급을 받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새로 유행하는 음악의 특징을 흡수하면서 살아남았다. 1970년대 중반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록 스타일로 편곡해 발표하기도 했다.

쏟아지는 미국문화에 트로트가 밀려나는 듯 하던 1980년대 중반, 주현미가 발표한 메들리 테이프 <쌍쌍파티>가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디스코가 트로트를 살려낸 것이다. 남성이 리드하는 ‘사교춤’이 아니라, 누구나 팔다리를 흔들면 되는 ‘막춤’을 출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트로트 메들리 덕분에 일어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에 ‘춤의 장’이 열린 것도 이때부터다.

트로트가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인식된 것은 미국 음악 영향이 거세지는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라고 손 교수는 본다. ‘트로트’라는 명칭으로 불린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앞서 ‘뽕짝’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쿵짝’ 두 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단순한 음악’이라는 비하의 뜻이 담긴 것이었다.” 이후 ‘서정가요’ ‘성인가요’ ‘전통가요’ 등 여러 명칭이 등장했으나 대중의 선택은 ‘트로트’였다. 타 문화와의 끊임없는 교섭 과정에서 세련된 미국 문화 느낌을 주는 용어가 살아남은 것이라고 손 교수는 분석한다. 일본의 ‘엔카’ 또한 1970년대 일본 문화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야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1965년 독재 정권은 당시 최고 인기곡이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금지곡 처분했다. ‘왜색이 짙다’는 게 이유였다. 1980년대에는 ‘뽕짝논쟁’도 있었다. 국악인 고 황병기 교수가 한 일간지 지면에 “뽕짝은 엔카의 아류다”라고 쓰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이후 음악·대중문화계 여러 인사가 각자의 해석을 내놓으며 1년간 논박이 이어졌으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음악인류학자로서 ‘트로트의 가치’를 역설해온 손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던 사람들도 결국 ‘그래봤자 일본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일 때 무척 안타까웠다고 했다. “서양 문물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일본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죠. 트로트는 100년동안 민중을 위로하며 일상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음악이에요. 그렇다면 가치는 충분한 겁니다.”



■ 3분의 ‘인생 드라마’

손 교수는 2004년 내놓은 박사논문에서 트로트를 ‘한국 고유의 음악양식’으로 정의했다. “트로트는 ‘어떤 음계를 썼다’, ‘어떤 박자를 썼다’를 기준으로 한정지을 게 아니라, 가사에 담긴 가치와 철학, 가수들의 몸짓, 한과 흥의 정서 등 모든 것이 응축된 하나의 양식(스타일)로 봐야한다.”

2002년부터 연구를 위해 경로잔치, 가요제, 노래자랑, 고속도로휴게소까지 트로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녔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끊임없이 물었다. “정말 가치를 알고 온 거냐, 아니면 학문적 업적만 달랑 취해 가려고 왔느냐.” 그렇게 그를 “‘찐’(진짜)인지 시험”하던 사람들로부터 신세도 많이 졌다. 현장을 보여준 무명의 가수들, 투잡·쓰리잡을 뛰면서도 무대라면 마다 않던 그들이 있어 연구가 가능했다. 그들은 인생의 질곡과 슬픔을 빼고 설명할 수 없는 이 장르를 ‘3분 인생 드라마’라고 불렀다.

■ 클래식 전공자가 트로트에 꽂힌 이유

작곡이론 전공으로 서울대 음대를 수석 졸업한 손 교수는 1998년 미국 텍사스오스틴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인기과목이던 ‘록 음악의 역사’ 조교를 맡았는데, 외국의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한국 음악을 들려주니 트로트에 유독 반응이 좋았다. 세계음악을 두루 접하면서 이 음악의 가치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2001년 무렵 트로트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다.

국내서 석사논문을 쓸 때부터 ‘주변부’에 관심이 많았다. 서양음악사의 ‘주류’인 프랑스·독일·이탈리아 음악이 아니라, 스페인음악을 연구하겠다고 나섰다. 스페인 음악이 고대 아라비아 영향을 받은 점이 흥미로웠다고 한다. 다양한 민속 음악에 관심을 가지며 음악인류학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한국에 돌아와 논문을 발표했을 때 학계의 반응은 냉랭했다. 슈베르트를 연구한 동료의 발표엔 귀 쫑긋 세우던 사람들이 그가 연단에 오르자 키득키득 웃어댔다고 한다. “트로트가 무슨 박사논문 연구 주제가 되냐는 식이었죠. 음악에 덧입혀진 편견때문에 엘리트 계층은 오랫동안 이 음악을 제대로된 연구 대상으로조차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 연구도 스스로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 나가는 과정이었고요.”

책 <트로트의 정치학>은 대학 강의 하나 얻지 못했던 ‘암흑기’(2006~2007년)에 쓴 것이다. “돌이켜보면 온실 속에 있던 저 스스로를 ‘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여전히 트로트가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진정성’에 있는 것 같다고 손 교수는 말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른 사람의 시선도 아니요, 진짜 내 마음에 솔직해지는 거죠. 학계에선 별로 주목하지 않았지만, 하고싶은 연구를 최선을 다해 했으니 저는 후회 없고요.”

최근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음악 교육이 손 교수의 주요 관심분야다. “교수님, 학교에서 트로트를 가르쳐도 되나요?” 기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질문이 되돌아왔다. “왜 우리는 베토벤, 모짜르트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특정 음악이 다른 음악보다 우월하거나 중요하다고 가르쳐선 안 됩니다. 다양한 음악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요?”

손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은 경향신문 유튜브 ‘이런경향’ 채널에서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미랑 기자 · 석예다 PD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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