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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김학주의 아웃룩] 동학개미, 죽창으로는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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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떨어졌다고 '묻지마' 매입… 韓 개인투자자들 과거 버핏 흉내

글로벌 투자자 떠나는 이유는 교역 감소로 한국이 받을 타격 때문

알면 투자 모르면 투기… 확실히 아는 나만의 투자 대상 집단 필요

조선일보

김학주 한동대학교 교수


코로나 사태 이후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을 팔고 있다. 반면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그 매물을 밑에서 받고 있다. 그 모습이 외세에 저항하는 것 같아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린다. 그들은 과연 기대했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워런 버핏은 저평가된 가치주를 좋아하는 투자자로 유명하다. 그는 2009년 금융 위기 당시 주가가 폭락했던 골드만삭스, JP모건을 비롯한 투자은행들과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수요가 안정적인 제조업체들의 주식을 싸게 사 모았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 때는 사뭇 달랐다. 이런 기업들에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지 않았다. 이 기업들이 더 이상 가치주가 아님을 인정한 셈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개인 투자자는 과거의 버핏 흉내를 내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파는 이유

코로나 확산이 중국의 관리 소홀 때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에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구실을 찾고 있다고 받아친다. 코로나를 둘러싼 책임 공방 한가운데에 교역 마찰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이 제재를 가해 중국에 투자한 돈이 빠져나간다 해도 중국 수출 기업은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품 가격 경쟁력이 생긴 만큼 달러를 더 벌어 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압박은 허사가 된다. 미국은 패권을 지키기 위해 교역을 끊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교역 감소가 가져올 후폭풍을 두려워하고 있고, 한국 같은 수출 의존 국가들이 받을 타격을 우려한다. 이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다. 이런 움직임은 코로나 사태를 지나며 가속화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추진됐던 세계화는 많은 나라의 경제 단위를 키웠고, 이로 인해 교역이 복잡해지는 과정에서 파생된 고용이 상당했다. 이제 그것이 거꾸로 진행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보급될 원격 설루션은 우리를 스마트하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비효율에 가려져 있던 직업을 제거할 것이다. 14.7%까지 급등한 미국 실업률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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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려가 시중금리에도 반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가 서민을 돕기 위해 국채 금리를 내려도 그만큼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 모기지 30년물 금리는 국채 10년물 금리보다 1.5~2.0%p 정도 높았는데 지금은 그 차이가 2.6%p까지 벌어졌다. 신용 위험 스프레드가 더해진 결과다.

개미 투자자들이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많이 사 모은 주식이 삼성전자다. 향후 정보화 사회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데이터 처리량이 많아지며 IT 하드웨어가 고기능화되고, 반도체 수요도 증가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전에 실업률이 상승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당장 고가 스마트폰 판매가 차질을 빚고, 반도체 수요도 위축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시장 진입도 부담스럽다. 중국의 반도체 경쟁자들은 주로 공기업이다. 삼성전자가 중국 정부를 상대로 '머니 게임'을 하려면 상당히 피곤할 것이다.

가망 없는 기업→성장 가능 기업으로

요즘 증시에 애국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외국인들이 파는 주식을 사 주면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까. 가망 없는 기업에서 자금을 빼서 성장이 가능한 쪽으로 옮겨 놓는 것이 애국 아닐까.

일본의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가 넘지만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민간 저축이 그 이상 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고 해외투자를 통해 부(富)를 잘 지킨 덕분이다. 개미 투자자가 건강하게 살아남아 있는 것이 애국이다.

코로나 쇼크 때 저점 매집을 잘한 개미들은 지금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팔 수 있을까. 가끔 일반 투자자 중에 매수할 특정 자산을 추천해 달라는 분들이 있다. 설령 그에게 골라 준 자산 가격이 상승해도 의미가 없다. 적정 가치를 모르면 팔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를수록 상승 여력이 가격에 반영된 것이므로 투자자는 경계해야 하지만 개미들은 그 주식과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팔지 못한 채 장렬하게 함께 전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개미들은 한국에 투자했다. 또 대형 제조업체를 집중 매수했다. 살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그들이 삼성전자와 함께 사 모은 현대차도 2019년 투자수익률(ROIC)이 1.5%에 불과했다. 나머지 주식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워런 버핏도 구경제를 포기한 마당 아닌가. 그만큼 개미들의 투자 범위가 좁고, 투자 원칙도 없어 보인다. 마치 개미가 죽창을 들고 있는 모습 같아 안쓰럽다.

투자 대상을 90% 알아야 한다

투자수익률은 반복 가능해야 의미가 있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원칙이 작동하며 수익률을 만들어 줄 것이다. 투자 대상은 90% 이상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남들보다 빨리 대응할 수 있고, 실수도 적어 신뢰 가능한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공부해서 90% 이상 아는, 자신만의 투자 대상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투자 범위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매도할 능력과 용기도 얻을 수 있다.

동일한 자산에 자금을 투입해도 알고 하면 투자고, 모르고 하면 투기가 된다. 공부해서 아는 만큼 투자 대상이 확대되고, 수익률도 안정되며 높아진다. 투자에서 '동학'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자신의 투자 범위를 국내로 가둔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김학주 한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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