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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사설] 세계는 ‘백신 패권 전쟁’…한국만 소외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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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국제 공조 대신 각개전투식 속도전

우리도 개발 서둘러 ‘백신 독점’ 대비해야

미국 바이오업체 모더나의 백신 후보물질이 1상 임상시험에서 전원 항체 형성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세계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들려온 고무적인 소식이다. 백신 조기 개발의 기대가 커지면서 미국은 물론 우리 증시도 급등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낙관은 이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내 백신 개발 완료’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대다수 전문가는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긍정적 1차 임상 결과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국제백신연구소 제롬 김 사무총장에 따르면 보통 백신 개발에는 5~10년이라는 세월과 5억~15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

세계 각국이 백신 개발 전쟁을 벌이며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이런 난도 때문이다. 미국은 ‘초고속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군, 민간 제약사가 합동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서 국유기업과 인민해방군까지 동원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민간 제약사에 대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각개전투식 속도전을 펼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백신 패권’ 때문이다. 개발된 백신을 자국민에게 우선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유할 백신 배분권을 외교·통상에서 유용한 무기로도 쓸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이 설 자리다. 벌써 백신과 치료약을 특정 국가나 제약사가 독점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기조연설에서 “치료제·백신 개발을 위해 국경을 넘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적 방역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연대의 가치를 강조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가 당위에 그치지 않으려면 백신·치료제 개발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받쳐줘야 한다. 세계적 신약 패권 전쟁에서 우리만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우리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국내 제약사들이 저마다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정부도 지원단을 구성하는 등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뒤처지는 게 사실이다. 세계 유수의 제약사가 이미 인간 대상 임상시험에 들어간 상태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동물 대상 시험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 진단키트 개발로 세계의 찬사를 받았지만, 백신 개발은 기술적 난도와 투자 규모 등에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부 지원이 충분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백신실용화사업단 예산 119억원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최대한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정해진 예산을 돌린 데 지나지 않는다. 새로 투입된 예산이 예비비와 추경을 합쳐 60억원 정도라지만, 생색내기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이번에 성과를 낸 모더나 한 곳이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만 5억 달러(약 6000억원)다. 예산 항목이나 연구개발 순위 조정 등으로 투자 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다. 신약 개발의 패스트트랙이 가능하도록 관련 인허가 규정도 과감하게 손봐야 한다. 성공적 방역 경험에서 쌓은 자신감을 백신 개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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