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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사람사전]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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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철 카피라이터


내 절반이 있는 곳. 나머지 절반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른다면, 혹시 내 전부가 회사에 있는 건 아닌지 반드시 체크할 것. 정말 그렇다면 하루빨리 회수할 것. 내 묘비에 이렇게 적히지 않으려면. 회사를 다닌 사람.

『사람사전』은 ‘회사’를 이렇게 풀었다. 다음 단어 ‘회의실’은 또 이렇게 풀었다. 내 나머지 절반이 회사에서도 잘 안 보이면 마지막으로 문을 열어봐야 할 곳. 분명 이곳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니.

회사에 무슨 유감이 있어 이런 정의를 내린 건 아니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자세에 딴죽을 걸고 싶어서다. 모든 나는 1이다. 잘난 나, 못난 나 모두 1이다. 회사에 나를 0.7 주면 0.3만 집으로 돌아간다. 0.9를 회사에 바치면 0.1만 퇴근한다. 쉬운 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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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나를, 내 밥을, 내 꿈을 실현하는 고마운 수단이다. 우리는 이 수단과 만나기 전 이력서라는 걸 썼다. 그러나 이력서 어디에도 내 전부를 회사에 주겠다는 통 큰 맹세는 없었다. 하지도 않은 맹세를 지킬 이유는 없다.

수학 한 번만 더 하자. 1의 절반은 얼마인가? 0.5. 짝짝짝. 그대의 수학은 녹슬지 않았다. 회사에 나를 0.5만 주자. 나머지 0.5는 누구에게 줄까. 내 가족에게, 내 친구에게, 내가 사는 이 세상에게 고루 나눠주자. 그럼 나는? 나는 빈손인데? 섭섭해할 것 없다. 가족이 나다. 친구가 나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나다.

내 묘비엔 어떤 문장이 적힐까. 회사를 다닌 사람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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