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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5월20일 '10.26 사건' 김재규 사형 확정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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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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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월 서울 고등군사재판소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증언 중인 김재규.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0년 5월20일 ‘10·26 사건’ 김재규 사형 확정

“이조시대 이래 2인 이상이 역모를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골똘히 구상했다”

누구의 말일까요. 박정희를 암살한 10·26 사건의 김재규가 훗날 신문을 받는 과정에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계획했다기엔 허술해 보이고, 그렇다고 그저 우발적이라고 보기엔 치밀한 구석이 있는 10·26 사건. 10·26의 성격과 의의 그리고 김재규의 실제 의도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역사적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40년 전 오늘(5월20일) 경향신문에는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형을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확정했다는 기사가 1면에 실렸습니다. 김재규를 도운 박선호 전 중앙정보부 비서실 의전과장, 이기주 전 중앙정보부 경비원, 유성옥 전 중앙정보부 운전사, 김태원 전 중앙정보부 경비원도 이날 함께 사형이 확정됐습니다. 박흥주 수행비서는 현역 군인이라 단심제가 적용돼 1심만으로 사형이 결정되었습니다.

김재규는 10·26 직후 수사·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을 도운 부하직원들에게는 극형이 선고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재규 스스로 “이조시대 이래 2인 이상이 역모를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골똘히 구상했다”고 밝혔듯, 박선호·박흥주·이기주·유성옥·김태원 등 그 누구도 사전에 김재규와 박정희 암살에 대해 논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그날 김재규 혹은 김재규의 지시를 받은 박선호·박흥주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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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0일 경향신문 1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부하직원들에게 ‘박정희 암살’ 계획을 밝히고 지시를 했을 때 부하직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이 있던 1979년 10월26일 김재규는 아끼던 부하직원인 박선호 중정 의전과장, 박흥주 수행비서(현역 육군대령)를 따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도 다 죽는다. 오늘 저녁 해치우겠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어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을 처치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때 박선호 의전과장이 ‘각하도 포함되느냐’고 물었고 김재규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박선호는 청와대 경호원 규모가 많으니 다음 기회로 미루자는 제안을 하지만 김재규는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암살 계획 유출 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재규는 두 사람에게 “똑똑한 놈 세명만 골라서 나를 지원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이기주·유성옥·김태원이 합류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여러차례 “나는 그들에게 선택의 여유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생략) 저에게 극형을 내려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극형만을 면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김재규와 박선호·이기주·유성옥·김태원은 이날 대법원의 선고 나흘 후인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박흥주는 10·26 당시 현역 군인이었기에 1심 선고 만으로 사형이 확정됐고 1980년 3월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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