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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김동호의 시시각각] 문제는 나라의 신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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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 늘면 빚 대물림보다

신용등급 하락 사태가 더 위험

재정 풀되 현금 살포는 멈춰야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린 지 열흘이 지났다. 일터의 휴·폐업이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난감한 사람들에겐 요긴한 돈이다. 이들에겐 당분간 동네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는 데 쓰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생겼다. 과연 이런 무차별적 현금 살포로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사태를 넘길 수 있을지 말이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지금 국제사회 곳곳에서 눈에 불을 켜고 한국을 들여다보고 있다. 석 달 사이에 3차 추경까지 벌이는 한국의 재정이 온전할지, 여차하면 한국 증시에서 돈을 빼야 할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엄중한 경고를 날렸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현금 살포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국민이 선호한다면 우리 앞날은 밝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달러·유로화를 찍는 미국·유럽과 달리 한국이 재정을 너무 쓰면 환율 급등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귀담아들을 얘기다.

‘재정을 너무 쓰면 환율이 급등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이 경고를 받아들인다면 재정에 의존하는 정책이 꼬리를 물고 나올 수 없다. 현 정부는 재정 확대에 거침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왜 40%를 넘어서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라 곳간지기 기획재정부가 국가채무비율 40%에 집착하자 그러지 말고 재정을 확대하자는 주문이었다. 40%는 공식은 없지만 근거는 있다. 유럽연합(EU)은 경제 통합 과정에서 국가채무비율 상한을 60%로 제시했다. 재정적자는 GDP의 3%를 상한으로 뒀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재정적자가 치솟는다. 이런 문제를 막는 장치가 바로 국가 채무비율이라는 얘기다. 유럽이 60%라면 안보 리스크가 있는 한국은 40% 정도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라는 게 역대 정부 책임자들의 판단이었다. 현 정부는 이런 판단을 부정한다. 미국을 비롯해 선진 각국에서 국가채무비율 100%를 넘겨도 잘만 살고 있는데 왜 한국은 40%에 얽매여 있느냐는 주장이다. 더구나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서는 과감한 재정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한 국가 안에서는 자국 통화로 아무리 돈을 많이 찍어도 문제가 없다는 현대통화이론(MMT)까지 거론하면서 재정 확대를 요구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이 미국·일본·유로존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가 달러를 들고 와 한국 증시에서 주식·채권을 사들이는 것은 환율이 안정돼 있다는 전제가 있어서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재정적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경제 활력이 떨어져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고 정부의 재정이 어려워진다는 신호가 된다. 국제 신용평가 기관은 국가 및 기업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외환위기 때처럼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고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환율이 불안해진다. 이렇게 되면 4000억 달러 넘게 쌓아둔 외환보유액은 맥을 못 춘다. “국가채무 좀 더 늘면 어때”라고 할 때가 아니라는 거다. 국제기구는 한국에 재정을 확대하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우선순위에 따라 꼭 필요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곳에 쓰라고 했다. 규제개혁을 병행해야 효과가 난다고 덧붙인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한국의 재정을 지켜보라는 신호탄을 국제사회에 쏘아올렸다. 한국의 성장률이 최악의 흐름으로 가면 국가채무비율이 50%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이유가 무엇이겠나. 이제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슬슬 의심받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재정을 많이 쓰면 기성세대가 청년층에 부채를 물려준다는 걱정은 걱정도 아니다. 그러기 전에 국가 신용등급부터 내려가는 게 더 큰 걱정이다. 빌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했듯, 문제는 신용등급이란 얘기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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