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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국민 절반이 사는데, 아파트 공시가격은 감사도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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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공시지가 '부실 산정'… 아파트 포함하면 문제 더 심각]

올해 공동주택 공시價 이의신청 3만7410건… 작년보다 30% 증가

文정부 출범 3년새 100배 급증

감사원 "인력 모자라 감사 못해"

감사원이 19일 발표한 '2019년 부동산 가격공시 운용 실태' 감사 결과에는 국민의 절반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빠져 있다.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들쭉날쭉한 사례가 다수 드러났는데 애초 더 많은 논란이 일었던 아파트 공시가격 감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은 "감사 인력과 기간의 한계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감사 범위에 포함시키지 못했다"면서 향후에도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번 감사 결과에 따라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은 조정될 예정이지만 감사 대상에서 빠진 아파트 공시가격은 이의 신청 제출 시한(오는 29일)까지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조정은 불가능하다.

올해 1월 1일 기준, 전국 단독주택은 418만가구인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1383만가구에 달한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의견 제출은 3만7410건으로, 지난 2007년 5만6355건 이후 최대였다.

공시가격 이의 신청 급증, 수용률은 2.4%에 그쳐

조선일보

부동산 공시가격 상승은 재산세·건강보험료 등 각종 세금과 부담금 인상으로 이어진다. 올해 공시가격이 확정되면서 시세 9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의 '세금 폭탄'은 현실이 됐다. 우병탁 신한은행 세무사가 모의 계산한 결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전용면적 84㎡)를 가진 1주택자의 공시가격은 34.2% 올랐지만, 보유세는 지난해 404만원에서 올해 587만원으로 45.3% 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 연말 23억원에 거래됐지만, 최근엔 18억원대까지 호가(呼價)가 떨어졌다. 공시가격(15억9000만원)이 호가의 80%가 넘게 돼 집값 하락세가 계속되면 공시가격과 시세 간 역전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올해 1월 1일의 시세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올해 집값이 떨어지면 내년에 반영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유세를 내야 하는 하반기에 "집값은 떨어졌는데 세금만 늘었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이재성 은마아파트소유자협의회 대표는 "소유자 대부분이 투기 세력이 아니라 집 한 채 가진 사람들"이라며 "공시가격이 너무 올라 세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폭주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열람 기간 전국에서 총 3만7410건의 이의 신청이 접수됐다. 지난해보다 30% 증가한 것으로 2007년 이후 13년 만의 최대 규모다. 이의 신청은 2017년 336건이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이 높아지면서 3년 사이 100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접수된 이의 신청의 94%는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의 신청 가운데 915건(2.4%)에 대해서만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상향 조정은 130건, 하향 조정은 785건이었다. 의견 수용률은 2018년 28.1%, 2019년 21.5%에 달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7단지는 입주민대표회의에서 집주인 500명의 의견을 모아 한국감정원에 공시가격을 낮춰달라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목동7단지 관계자는 "최근 3~4년간 공시가격이 20~30% 급등해 세금 부담이 너무 크다"며 "단 1%도 반영이 안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국토부는 공시가격 관련 이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시세 등을 고려해 적정하게 산정했다"는 정도의 짧은 답변만 내놓고,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달 29일까지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이의 신청을 추가로 받고 있지만, 이날 현재까지 몇 건의 이의 신청이 접수됐는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공시가격 산정의 투명성·형평성 논란

감사원이 부동산 가격공시제도를 점검하고 나서면서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공시가격이 제대로 개선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가격공시제도에 대한 국민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이 공시가격 산정 기준이 불투명하고, 지역별·가격대별로 시세 반영률이 제각각인 점 등 투명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이번에 감사원이 내놓은 시정 요구 사항에 그런 내용이 충분히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28일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전국은 5.98%, 서울은 14.73% 상승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목표치를 9억원 미만은 68.1%, 9억원 이상은 72.2%로 차등 적용했다. 하지만 정부는 공시가격의 기준이 되는 시세가 얼마인지, 어느 시점 매매 거래를 시세로 삼았는지, 최근 해당 호수 거래가 없었을 경우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등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매년 공시가격 공개 때마다 산정 기준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빗발치지만, 정부는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노태욱 강남대 교수는 "조세와 부담금의 산정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산정 절차나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한 공시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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