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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사설]KT&G의 기자 월급 가압류, 명백한 언론 탄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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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가 자사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쓴 경향신문 기자의 급여 가압류를 신청했다. 지난 2월26일 경향신문에 실린 ‘KT&G 신약독성 숨기고 부당합병 강행 의혹’ 기사는 KT&G가 2016년 자회사(KLS)가 개발한 신약물질에서 독성성분이 확인돼 영진약품 관계자들이 반대했음에도 두 회사 합병을 밀어붙인 의혹을 제기했다. 이틀 뒤 KT&G는 경향신문과 편집국장·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2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고, 기자에겐 제세공과금을 제외한 급여 절반을 2억원에 이를 때까지 가압류 절차를 밟아달라고 해 받아냈다. 언론중재위 제소와 민사소송을 동시에 낸 것도 통상적이지 않고, 기자 급여를 가압류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언론 5단체는 18일 ‘새로운 유형의 재갈 물리기’라고 일제히 규탄했다. 기자협회는 “기자 개인의 생계를 어렵게 해 비판 목소리를 잠재우고 동료 기자들에게 심리적 위축을 주려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도 공동성명에서 “영업이익만 연 1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기자 밥줄이나 다름없는 월급을 가압류하려는 의도는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해 14차례의 경향신문 탐사보도가 금융감독원의 KT&G 감리에 영향을 끼친 데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3~8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KT&G의 인도네시아 담배회사 인수 과정에서 벌어진 회계분식 의혹을 제기했다. 금감원은 지난 3월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짓고 KT&G에 검찰 통보와 임원해임 권고 등 중징계 내용을 사전통지했다. 언론 5단체가 이 소송을 ‘돈으로 입을 막으려 한 명백한 언론탄압’으로 규정짓고 공동 대응한 이유이다.

국가와 기업이 소송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슬랩(SLAPP) 퇴치법을 둔 나라가 많다. 슬랩은 공공의 참여를 막으려는 전략적 소송을 뜻한다. 미 대법원은 “머리에 총 겨누는 걸 제외하고 이 소송보다 표현의 자유에 더 위협이 되는 것은 없다”고 판결했다. “공공 이슈를 제기한 사람이 보복을 겪거나 목격하면 장래에 침묵을 선택하기 쉽다”고 본 것이다. 한국에서도 2011년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다투며 ‘국가는 명예훼손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판례가 나왔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언론을 상대로 소송의 날을 곧추세우고 있다. 사회 투명성은 언론 자유와 권력 비판이 보장될 때 높아진다. 국회는 법적 미비점을 보완하고, KT&G는 소송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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