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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경제와 세상]언택트에 저무는 ‘촉각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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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멀티미디어에 기반한 시각과 청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야말로 ‘촉각’의 시대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제품의 성능을 평가할 때 ‘터치감이 좋다’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 터치스크린 기술이 보편화하면서 휴대폰, 노트북 등과 같은 전자기기에 터치스크린을 적용하고 있고, 주요 공공 안내표지판 역시 키오스크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자동차 역시 기계식 버튼에서 터치스크린으로 대체되고 있는 추세이며, 학교 역시 전자칠판이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들이 만져야 작동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터치’ 내지 ‘촉감’은 일상에서 접하는 주변기기를 조작하기 위한 수단적인 용도(instrumental touch)로 자리매김하였다.

경향신문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언택트(Untact, 비대면) 산업이 대두되면서 촉각을 중심으로 한 환경이 급격히 수정·보완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늘 사용해 왔던 공용 공간의 여러 버튼들을 누를 때마다 왠지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레스토랑이나 관공서 키오스크들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만질 수밖에 없는 물건들이며 건물 엘리베이터 버튼도, 백화점 혹은 관공서 입구의 자동문 버튼도 매일 수만명의 사람들이 함께 만지는 물건들이다. 즉,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 간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많은 공공장소에서 항균 필름을 이들 버튼에 씌워두거나, 손소독제를 비치해두고 반의무적으로 손소독을 요구하는 이유 역시 비록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버튼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유발될 수 있는 접촉의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항균 필름 내지 손소독제와 같은 미봉책에 의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시 말해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는 상황에서 유발될 수 있는 상호 간의 접촉마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언택트 상황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접촉’을 통한 소통이 아닌 ‘음성’과 ‘동작(motion)’을 활용한 기술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동작인식(motion recognition) 기술은 화면을 터치하지 않고 손동작을 카메라가 인식하여 이러한 동작을 통해 기기를 작동시키는 기술을 의미한다. 현재의 동작인식 기술은 신체 골격을 인식하고 각 관절의 정보를 이용하여 상호작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또한 특정 기기를 작동시키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야만 하는 단점을 보완하여 원거리에서도 얼마든지 기기를 작동시킬 수 있다. 이러한 동작인식 기술을 엘리베이터 버튼 내지 자동문 버튼에 활용할 경우 불특정 다수가 동일한 버튼을 만져야만 하는 불쾌함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버튼 위에 굳이 항균 필름을 부착하는 수고로움도 덜어낼 수 있다.

음성인식 기술 또한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 스피커 내지 차량 내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음성으로 주변기기를 조작할 수 있음을 경험해 본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음성을 사용해 기기와 소통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좀처럼 보편화하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불쾌감을 줄일 수 있다면 기꺼이 음성을 통해 제품을 조작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할 것이고, 음성을 사용한 기기 조작은 점차 그 쓰임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언택트 산업 자체가 갑작스럽게 부상한 신조어 내지 신산업이다 보니, 해당 산업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 무분별하게 관련 용어를 사용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택트 산업이 일순간 유행하는 신조어가 아니라 명확한 신산업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비대면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촉각’이 아니라 ‘음성’ 내지 ‘동작’을 활용한 소통 수단에 더더욱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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