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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일사일언] 국보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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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광표 서원대 교수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 불에 탄 숭례문이 국보로서 자격이 있는지,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긴급히 문화재위원회가 열렸다. 위원회는 "목조 누각의 상당 부분이 불에 탔다고 해도 석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데다 원형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보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얼마 전 문화재위원회는 국보 168호 백자동화(銅畵)매화국화무늬병을 국보에서 해제하기로 했다. 이 백자는 1974년 국보로 지정된 이후 "중국 도자기가 아닌가"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최근 문화재청은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14세기 원나라 도자기'로 결론지었다. 희소성이나 학술적 가치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국보 해제'에 관한 이야기는 늘 세간의 관심을 끈다. 국보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을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해제 논의를 진행한다. 그런데 해제는 지정보다 더 조심스럽고 어려운 과정이다. '가치 상실'의 기준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2001년 1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 절도범이 침입했다. 그는 국보 238호 '소원화개첩(小苑花開帖)' 등 문화재 100여 점을 털어갔다. 안평대군의 서첩인 소원화개첩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해외로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 벌써 실종 20년째. 소원화개첩이 국보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행방불명 상태만으로 국보로서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국보로서의 자격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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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실종된 소원화개첩이 언제까지 국보 자격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관심의 대상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은 소원화개첩이 계속 국보이기를 원한다. 무사 귀환에 대한 기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문화재 절도범들은 종종 훔쳐간 문화재를 조용히 돌려보내기도 한다. 특정 장소에 몰래 갖다놓고 사라지는 식이다. 범인을 잡는 게 가장 급한 일이지만, 소원화개첩에 그런 일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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