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2 (일)

‘시한폭탄’ 뻔히 알면서도…해외사모펀드 돈 되면 일단 팔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김소연 기자, 조준영 기자] [편집자주] 저금리 시대에도 고수익을 추구하기 위한 해외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선풍적인 인기에 앞다퉈 출시된 해외 사모펀드들이 최근 잇따라 기초자산 부실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외 사모펀드가 고위험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 구조적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을 모색해봤다.

[MT리포트-‘시한폭탄’ 위기의 해외사모펀드] (上)


수수료 쫓다 부실 함정…돈 날린 '고위험' 해외 사모펀드


머니투데이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에서 최근 62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브리핑 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해외 펀드를 들여올 땐 증권사들이 연 수익률 10% 이하는 쳐다보지도 않아요. 국내·해외 자산운용사, 증권사 수수료를 빼면 고수익 상품인 10%를 가져와야 투자자들에게 6%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국내 자산시장이 해외 사모펀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라임 무역금융펀드부터 하나은행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신한금융투자 독일 헤리티지 DLS(파생결합증권), 기업은행 디스커버리채권펀드, KB증권 호주부동산펀드까지 잇따라 대규모 손실을 터뜨리고 있다.

선풍적인 인기로 고액자산가들에게 판매된 해외 사모펀드는 왜 '부실' 논란에 빠지게 된 것일까. 금융투자업계는 해외 펀드를 국내에 들여오는 과정에서 제도적인 문제로 수수료가 높아지자, 판매사들이 해외 고수익 고위험 상품을 대거 들여온 것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비싼 국내 수수료에 판매사 고위험·고수익 해외 상품 눈독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대규모 손실이 난 해외 사모펀드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해외 비유동 자산에 투자했고 둘째, TRS(총수익스왑) 또는 DLS를 이용해 증권사가 실질적으로 운영했다는 점이다.

저금리 상태가 지속 되면서 금융투자업계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인 대체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높여왔다. 하지만 이들 펀드가 국내 투자자에게 제시한 수익률은 연 5~8%에 그친다. 해외 상품을 국내로 들여올 때 국내 운용사 수수료, TRS 수수료, 판매 수수료가 더 붙기 때문이다.

해외 펀드를 국내 투자자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국내 운용사를 통해 펀드를 조성하거나, 역외펀드로 등록해야 한다. 역외펀드로 등록하면 국내 수수료가 줄어들지만, 펀드 내에서 환율을 헷지할 수 없어 투자자들은 별개로 환헷지를 해야 한다. 때문에 원화로 투자하려는 개인투자자들에게는 국내 운용사를 통해 해외 펀드를 출시하는 것이 유리하다.

문제는 국내 중소형 운용사들이 해외 펀드를 직접 관리·운용하기에는 어렵다는 점이다. 때문에 증권사에게 이를 맡기는 TRS, DLS, DLF(파생결합펀드) 등의 구조를 이용하게 된다. 이들은 증권사가 발행한 일종의 채권이기 때문에, 자산운용사들이 해외 거래를 직접 하지 않고도 투자자들에게 수익률은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중첩적인 구조 때문에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에서 펀드를 실제 운영하는 해외 자산운용사 수수료, 국내 운용사 수수료, TRS·DLS·DLF 수수료, 판매수수료 총 4번에 걸쳐 비용을 내야 한다. 이 중 국내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보통 4%에 달한다. 비용만큼 투자자들이 제시되는 수익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10% 이상의 고수익 상품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채권 등 유동성이 좋은 자산으로는 고수익을 보장하기 어렵다. 고위험이지만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부동산, 비우량채권 등 비유동 자산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해외투자펀드의 순자산총액은 191조9000억원으로 3년 전인 78억5000억원 대비 2배 이상이 급증 했다. 이 중 대체투자 자산은 약 100조4000억원으로 전체 해외 투자의 절반에 달한다.

하지만 철저한 실사와 검증을 하지 못하고 해외 상품이 무더기로 국내에 들어오면서 결국 이들 상품은 부정 운영 및 유동성 리스크에 빠져버렸다.

A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수수료가 중첩되면서 투자자들에게 전달되는 수익률은 낮아지는데 위험성은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높아 해외 사모펀드가 고위험 중수익 상품이 돼 버렸다"고 밝혔다.

◇해외 실사 역량 낮아 '부실 사태' 초래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국내 금융투자기관들은 해외 펀드의 실사와 검증에 실패했을까. 이 또한 비용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우리나라 투자의 중심은 국내 주식과 채권, 부동산이었다. 해외 상품으로 시각을 넓힌 만큼, 해외 투자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경험과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내실을 다지기 전에 상품을 먼저 들여와 부실 논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상품에 대한 고객 니즈를 잘 아는 판매사(증권사·은행)들이 해외 리서치 역량이 없는 중소형운용사를 이용해 OEM(주문자생산)펀드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나온다. OEM펀드란 판매사가 자산운용사에게 상품 설계 및 운용에 관여하는 것으로,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판매사가 해외 펀드를 들여오기 위해 여러 자산운용사에게 상품 출시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하지만 문제는 금융당국이 펀드 출시 전에 이를 미리 알고 단속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자산운용사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B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도 해당 펀드의 수익률, 펀드평가기관으로부터 얻는 정보, 판매 실적 등 객관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상품설명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투자자들에게 투자상품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위험등급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한금융투자가 판매한 독일 헤리티지 DLS는 위험등급이 고위험(2등급)이었다. 2등급이란 원금이 20% 미만으로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상품은 원금 50% 손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상품의 현지 시행사인 저먼프로퍼티그룹(GPG·옛 돌핀트러스트)는 횡령·사기 등이 불거지면서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유동 자산은 투자 실패뿐 아니라 운용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자산가치의 하락, 펀드 유동성을 넘어서는 투자자들의 환매요청, 금융위기 및 테러 등 외적인 시장 충격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인지 기자, 김소연 기자, 조준영 기자


'시한폭탄' 해외사모펀드...어떻게 만들어지나


머니투데이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금융위원회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 사태 재발 방지와 관련한 종합대책을 발표한 14일 DLFㆍDLS 피해자 비대위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상 촉구 집회를 열고 손 피켓을 들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날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상품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규정하고 은행에서 고난도 사모펀드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2019.11.14./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십억 원 많게는 수천억 원의 투자 손실이 난 해외 사모펀드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의 의료매출채권, 독일의 문화재 부동산 개발 산업 등 특이한 상품까지 발굴해 투자자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자산구성과 위험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잇따라 대규모 손실을 내고 있다. 이 상품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국내 투자자들에게 판매되는 걸까.

◇해외 채권 모아 고수익 펀드 구성

이번에 문제가 된 해외 사모펀드의 기초 자산은 대부분 채권이다. 하나은행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 산하 지역보건관리기구(ASL)에 청구하는 진료비를 유동화한 채권에 투자했다. 신한금융투자 독일 헤리티지 DLS(파생결합증권)는 독일 시행사인 돌핀트러스트(현재 German Property Group)가 기념물보존등재건물 재건사업을 위해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인수한 싱가포르 자산운용사 '반자란자산운용'의 대출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채권펀드는 P2P업체에 투자금을 대는 미국 운용사 DLI펀드의 사모사채를 매수하는 상품이고, KB증권 호주부동산펀드는 호주정부의 장애인 임대주택사업 관련 아파트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채권을 안전자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채권을 발행한 기업의 신용등급, 혹은 선순위냐 후순위냐에 따라 안정형이 될 수도, 위험형이 될 수도 있다. 리스크가 큰 채권일수록 금리가 높기 때문에 해외 IB(투자은행)들은 금가 높은 자산들을 쪼개고 모아 대출채권담보부증권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출채권담보부증권은 해외운용사가 펀드에 담게 된다.

결국 펀드가 담고 있는 채권과 이를 발행한 곳의 리스크를 평가해야 펀드의 위험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브로커·해외 컨퍼런스 등에서 상품 물색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판매사나 운용사들은 이들 상품을 주로 브로커나 해외에서 개최되는 관련 컨퍼런스(박람회)에서 접한다. 해외 컨퍼런스에서는 지역별, 자산별로 다양한 행사가 이뤄진다. 국내 금융투자사들은 이곳에서 자기 역량에 따라 상품을 들여오기도 한다.

브로커를 통하기도 한다. 주로 싱가포르나 홍콩에 있는 부티크(유사자문사)에 소속된 이들인데, 한국인 또는 교포 출신이 국내와 해외 금융사를 중개하는 일을 한다. 특히 주문형 상품을 낼 때 브로커와 접촉하는 경우가 많다는 업계 전언이다. 예컨대 국내 판매사나 운용사가 중위험에 연 4%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외상품을 원하면 브로커가 이에 맞춰 비슷한 수준의 수익률과 리스크가 있는 여러 IB(투자은행)의 상품을 제시하고 협의하는 식이다. 브로커들이 상품을 들고 국내 판매사들을 돌며 영업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성한 상품은 국내 운용사가 다시 하나의 펀드로 만들고 해외 펀드의 수익자가 된다. 그러나 중소형 자산운용사는 이를 직접 운용할 수 없어 이 수익권을 담보로 TRS(총수익스와프)나 DLS(파생결합증권) 등 파생상품을 만드는 절차를 거친다.

국내 운용사가 증권사에 이 같은 구조화를 의뢰하면 증권사는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이 같은 도매과정을 거쳐 최종펀드상품이 만들어진 후 증권사 또는 은행 등을 통해 소매판매가 이뤄진다.

◇판매자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해외 상품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해외 사모펀드를 만들다 보니, 판매사나 자산운용사가 직접 해외 상품의 기초자산을 제대로 실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A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해외의 구조화된 채권을 가지고 상품을 만든다면 그 채권이 적법한지, 안정적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운용사의 역량에 달려있다"면서도 "해외자산의 부실이나 범법행위 등을 국내에서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아 해외 IB나 자산운용사의 명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초자산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판매 창구에서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최근 부실기초자산으로 문제가 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의 경우 메일로 상품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은행 투자상품부 실무자 A씨는 지난해 지점 VIP 담당 PB(프라이빗뱅커)들에게 '사모펀드 출시안내'라는 이름의 메일 한 통을 보냈다. 메일에는 '투자 포인트'라는 아주 간략한 상품소개가 적혀있고 "본 메일의 회신으로 선착순 마감한다"는 문구가 있을 뿐이었다.

PB들은 자신의 VIP 손님을 예약가입 시키는 내용의 메일을 회신한 뒤 몇 장의 상품소개서로 고객 1인당 1억원 이상 투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제안서에는 "이탈리아 정부의 의료비 관련 예산초과로 지급지연의 위험성이 있지만 지연 이자를 감안할 때 수익률 확보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 현재 하나은행은 해당 펀드에서 500억원 이상의 손실발생이 예상되자 투자자들에게 사적화해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높은 수익률을 위해 해외펀드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다"며 "해외상품 관련 업력이 길어지면 차차 역량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영 기자, 정인지 기자

정인지 기자 injee@mt.co.kr, 김소연 기자 nicksy@, 조준영 기자 cho@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