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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판매사는 해외실사 나가서 골프만…부실책임은 운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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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조준영 기자] [편집자주] 저금리 시대에도 고수익을 추구하기 위한 해외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선풍적인 인기에 앞다퉈 출시된 해외 사모펀드들이 최근 잇따라 기초자산 부실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외 사모펀드가 고위험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 구조적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을 모색해봤다.

[MT리포트-‘시한폭탄’ 위기의 해외사모펀드] (下)


해외 사모펀드 부실 “실사는 너도나도, 책임은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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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금융회사들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를 배상할 것을 촉구했다. 2019.10.1./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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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자산 부실화로 환매가 중단되거나 연기되는 해외 사모펀드들의 핵심 문제점으로는 '부실 실사'가 꼽힌다.

앞서 문제가 된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투자운용사인 미국 IIG가 폰지사기로 소송이 걸린 상태에서 펀드가 판매됐고, 독일 헤리티지 DLS(파생결합증권)는 투자자산을 보유한 독일 시행사가 개발 인허가를 제대로 받지 않은데다, 회사 신용도도 낮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실 실사 눈총을 받고 있다.

기초자산이 해외에 있는 만큼 판매사나 운용사 모두 투자자들을 대신해 더 꼼꼼히 살펴봐야 하지만, 실사 부실에 대한 책임은 서로 미루면서 더 큰 문제를 양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한 제재규정이 명확치 않은 것은 문제다.

◇딜 소싱은 판매사가, 책임은 운용사가

해외 사모펀드들은 대개 '딜 소싱→현지 실사→펀드 설정→고객 판매'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딜 소싱(투자처 발굴)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대체로 은행, 증권사 등 판매사다. 상품에 대한 투자자 니즈를 파악하기 쉽고, 해외 네트워크 기반도 단단해서다. 투자자가 선호하는 자산, 수익률의 상품을 해외 브로커 등을 통해 물색해 딜을 소싱하고 운용사와 판매사 모두 실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만든 펀드에 대한 책임은 운용사가 진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판매사가 딜 소싱을 하고, 해외 실사 여력도 있지만 실사 부실에 대한 책임은 없으니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성이 적어진다. 운용사의 경우 반대로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책임이 있지만, 역량이 떨어진다. 이렇다보니 판매사가 해외 리서치 역량이 없는 중소형운용사를 이용해 OEM(주문자생산)펀드를 만들고, 운용사들도 이를 계기로 몸집을 불린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 최근 사고가 터진 사모펀드들의 운용사는 라임자산운용, JB자산운용, 브이아이자산운용,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으로 설립된지 5년 미만이거나 AUM(운용자산) 규모가 적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와 호주부동산펀드에 모두 관련된 JB자산운용은 AUM이 2014년 7000억원에서 지난해 6조원 이상으로 급격하게 늘기도 했다.

판매사는 해외 실사를 직원 보상차원의 해외 출장으로 활용하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A 증권사 관계자는 "해외 펀드 만들 때 딜 소싱 부서 외에 상품판매, 마케팅, 준법감시인 등까지 우르르 실사에 따라간다"며 "해외 펀드는 수수료가 높아 돈을 많이 번다는 인식이 있어 너도나도 해외실사에 같이 껴서 관광하거나 골프를 치고 오는 일이 허다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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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M 규제 강화했지만, 시행은 아직

문제는 이렇게 무책임하게 출시된 해외 사모펀드에 부실이 생겨도 운용사만 제재할 뿐, 판매사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독일 DLF(파생결합펀드), 라임자산운용 사태 등을 계기로 운용사와 판매사에 대한 책임 모두를 강화했다. 특히 OEM 펀드와 관련해서는 판매사에 대한 제재 근거도 신설하고, OEM 판단기준도 구체화했다. 고객 수요나 시장 상황, 판매동향 등의 일반적 정보 교류가 아닌 행위는 모두 운용지시로 보겠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모펀드 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운용사가 아무리 소규모여도 투자대상 결정이나 처분매매 방법에 대해 제3자의 의견을 따르면 OEM이고 운용지시 위반이라고 명시했다"며 "펀드 설정시에도 판매사가 운용대상을 결정했다는 사실관계가 입증되면 OEM 규정 위반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시행령 개정이 안돼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시행령이 개정되더라도 소급적용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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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판매사 책임 강화방안 필요"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OEM 규정이 강화되더라도 해외 부실실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태가 미봉책에 그칠까 우려한다. 금융당국도 이를 인식하고 대체투자펀드 설정시 해외 실사나 사후관리 책임 등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별자산펀드 업무처리 모범규준'을 만들고 있지만, 판매사는 해당이 안된다. 따라서 판매사 측에 해외 실사나, 자산의 질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의 대책이 요구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증권사들은 초대형 IB로 거듭나면서 해외투자 역량이 커져 딜소싱을 많이 하는데, 이를 펀드로 만들어 셀다운하면 책임이 끝나는 구조"라며 "운용사처럼 선관주의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판매사들도 해외 실사나 상품 기초자산의 질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소싱해온 딜을 전부 재매각하지 못하게 일부 지분을 남겨 놓거나, 펀드를 사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조준영 기자


자율배상 잇따르는 해외사모펀드…문제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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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파생결합펀드) 사태 피해자들과 금융정의연대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DLF 사태 관련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재개최 요구 청와대 진정서 전달 기자회견'에서 분쟁조정위원회 재개최를 촉구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 자리에서 "지난 5일 금감원의 DLF 사태 분쟁조정위원회는 은행 자체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수사 의뢰하고, 배상비율 재결정을 위한 분쟁조정위원회를 재개최하라"고 촉구했다. / 사진=강민석 기자 msphoto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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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해외사모펀드에 대해 판매사들이 잇따라 선제보상에 나섰다. 적극적인 투자자 보호 조치라는 점에서 금융당국도 환영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자율배상이 금융사의 책임 면피, 주주 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초자산 부실로 문제가 된 5개 금융상품(△라임무역금융펀드 △하나은행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신한금융투자 독일헤리티지DLS(파생결합증권) △기업은행 디스커버리채권펀드 △KB증권 호주부동산펀드)은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전에 판매사가 먼저 보상을 했거나 보상안을 마련 중이다.

KB증권은 지난해 호주부동산 펀드 투자자들에게 900억원의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면서 금감원에 접수됐던 투자자 민원이 모두 취하됐다. 라임펀드 판매 은행들은 투자자에게 예상손실액의 30%를 선보상하고 펀드평가액의 75%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라임 판매사 중 신영증권은 지난 3월부터 판매액의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선배상하는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하나은행도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에서 500억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되자 지난달 투자자들에게 사적화해방안을 제시했다. 기업은행도 디스커버리펀드에 대해 투자금의 일정비율을 선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신한금투도 투자금액의 50%를 가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판매사들의 선제보상 명분은 투자 신뢰 회복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배상을 하면 시기적으로 빠를 수 있다"고 말하며 장려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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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금융감독원장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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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펀드 부실화 책임을 벗기 어려운 판매사들이 일단 돈으로 투자자를 달래고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들이 지급하는 보상액 역시 투자자들이 맡긴 돈이다. 은행들이 대부분 상장사라는 점에서 주주권 훼손 우려도 있다.

이에 사태 초반에는 판매사가 선제적으로 보상책을 마련할 경우 '배임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KB증권이 호주부동산펀드 투자금을 돌려준 후 자율배상 물꼬가 트였다. 신영증권도 법적 자문을 통해 배임이슈가 없다는 의견을 얻고 자체 보상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와 별개로 금융회사의 주주권 훼손 이슈는 남는다. 금융회사들은 결국 보상액만큼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데 이는 모두 비용으로, 실적 악화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금융지주의 경우 대부분 최대주주가 국민연금이다.

올 1분기 기준 KB금융지주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으로 9.97%를 보유하고 있고 하나금융지주(9.94%), 신한지주(9.92)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지주는 예금보험공사(17.25%),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53.2%)가 최대주주다. 자율배상으로 은행들의 실적이 줄고 배당이 축소되면 궁극적으로는 국민연금 수익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워낙 자율보상이 확산되는 분위기여서 다들 참여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에 끼우는 것 아니겠냐"며 "가뜩이나 저금리, 코로나19(COVID-19) 불확실성 확대로 금융주 주가가 좋지 않은 상태인데 주주들 속내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영 기자

김소연 기자 nicksy@,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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