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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럭키박스'에 빠진 유통가… '득템 찬스'에 가려진 '재고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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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빈, 20일 럭키백 이벤트 진행
대형 유통업체와 PC 주변기기 업체도 럭키박스 이벤트 성행
작은 비용으로 큰 혜택 앞세우지만 '사행성 조장' 지적도

커피빈코리아가 7년 만에 럭키백 이벤트를 진행한다. 커피빈은 20일 로고 기획 상품(MD)과 커피 제품, 음료 쿠폰 등의 상품이 랜덤으로 들어있는 럭키백을 3만9800원에 한정 판매한다.

럭키백엔 럭키백 전용 머그와 스테인리스 텀블러 1~2종, 리유저블 텀블러, 스틱커피 1종, 무료음료권 2장과 제조음료 1+1 쿠폰 등이 들어있다. 커피빈의 럭키백 판매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쇼핑 커뮤니티에서는 쓸모가 많은 MD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득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옹호론자와 소비심리를 자극해 재고를 처리하려는 상술이라는 비판론자 간의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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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빈은 20일 럭키백 이벤트를 진행한다./커피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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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되네’…유통업체, 너도나도 럭키백 이벤트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유통업체들은 다양한 럭키백(박스) 상품을 출시했다. 특히 어린이날을 앞두고 완구류를 럭키백 형태로 선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롯데마트는 어린이날을 맞아 ‘유아완구 럭키박스’를 판매했다. 인기 캐릭터인 ‘폴리’와 ‘슈퍼윙스’ ‘토마스’ 등 완구 제품이 랜덤으로 구성했다. 이마트24는 ‘레고 기프트박스’와 ‘손오공 럭키박스’를 단독 판매했다. 홍대나 건대 등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엔 5000원을 내고 뽑기를 하는 ‘럭키박스 자판기’까지 생겼다.

게이밍 의자 및 PC용품 업체인 제닉스는 18일 ‘운빨의 세계’라는 럭키박스 이벤트를 진행했다. 2만원짜리 럭키박스를 500개 만든 후 소비자가 구매하면 미리 만들어 놓은 럭키박스 중 하나를 택배로 보내주는 방식이다. 제닉스 측은 럭키박스 500개 중에 10개에 20만원 상당의 게이밍 의자 교환권이 들어있다는 점을 홍보해 소비자들을 자극했다. 게이밍 의자가 아니더라도 고급 게이밍 마우스나 키보드, 이어폰, 방송용 마이크 등 소비자가격이 2만원 이상인 제품이 많았다. 가격이 가장 저렴한 상품인 모니터거치대도 정가가 2만4000원대로 ‘저주받은 손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란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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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밍 의자 및 PC 장비 업체인 제닉스가 지난 18일 럭키박스 이벤트를 진행했다./제닉스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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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사운드카드 전문업체인 사운드블라스터도 현재 럭키백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사운드블라스터는 7만9000원 상당의 중가형 사운드카드인 G3 모델과 4만5000원 상당의 저가형 사운드카드인 G1 모델을 40:60의 비율로 럭키박스에 담아 한 박스당 4만원(배송료 3000원 별도)에 판매했다. 기존 럭키백이 한정수량으로 진행됐다면, 사운드블라스터는 5월 16일부터 20일까지로 판매 기간만 한정하고 수량을 제한하지 않았다.

PC장비 전문 업체인 로지텍은 ‘마우스 럭키박스’ 이벤트를 자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만9900원의 럭키박스를 구입하면 보급형 마우스인 G102부터 고가 마우스인 G 903HERO모델이나 G PRO모델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로지텍 측은 ‘꽝’이라고 할 수 있는 G102제품의 정가가 2만9900원, 온라인마켓에서도 1만9000원대에 판매되고 있다며 '최소한 본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응은 뜨겁다. 인터넷엔 ‘어디어디 매장에서 로지텍 럭키박스를 구입할 수 있다’며 이른바 ‘좌표’를 찍어주는 게시글이 종종 올라온다. 자신의 럭키박스 뽑기 결과를 공유하는 글도 수두룩하다. 경험담을 보면 G102가 나왔다는 글이 대부분이고, 어쩌다 가끔 상위 기종을 뽑았다는 인증샷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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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진행된 로지텍 럭키박스 판매전./윤희훈 기자



◇ 사라진 '혜자 럭키백'…전문가 "재미도 좋지만 합리적 소비 추구해야"

럭키백 이벤트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아기자기한 상품을 획득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 대비 보상률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며 ‘꽝이 나와도 손해는 아니다’라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운이 좋으면 값이 더 나가는 ‘대박 상품’을 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한정 수량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번 기회가 아니면 구입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국내에서는 럭키백 이벤트를 가장 적극 활용하는 기업으로 스타벅스코리아(이하 스타벅스)가 거론된다. 스타벅스는 2007년 럭키백 이벤트를 처음 선보였다. 당시 스타벅스 럭키백은 보온 텀블러 한개 가격 수준인 2만8000원에 텀블러와 머그잔 등을 담아 ‘혜자 럭키백’으로 통했다. 10여년 전만해도 개인 텀블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럭키백 이벤트로 텀블러가 많이 보급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후 스타벅스가 럭키백을 출시하는 날이면 스타벅스 매장 앞엔 새벽부터 인파가 몰렸다.

매진 행렬 때문일까. 스타벅스는 서서히 럭키백 가격을 높였다. 올해 1월 출시된 스타벅스 럭키백의 가격은 6만8000원, 첫 출시 후 13년만에 가격이 2.5배로 뛰었다. 럭키백 구매 후기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인기가 적었던 ‘서울 시티컵’ 디자인 MD 상품으로 럭키백을 채우는 등 ‘가성비’가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스타벅스가 럭키백 이벤트를 빙자해 재고가 쌓인 상품들을 '땡처리'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유통업체들도 럭키박스 이벤트가 재고를 정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크게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재고 처리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고가 상품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또 소비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럭키박스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자들은 소비 행위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보고 재미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럭키박스 이벤트는 기업들의 상술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소비를 통한 재미 추구를 공략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소비자가 소비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도 좋지만 금전 지출이라는 부분에서 과연 합리적인 소비인지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희훈 기자(yhh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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