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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단독]현장 노동자 코로나에도…현대건설, 해외 공사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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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현대건설의 쿠웨이트 알주르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건설공사 현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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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등이 쿠웨이트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공사 현장에서 90명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지만, 제대로 된 방역 조치나 정보 공유 없이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천문학적 지연 배상금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 측은 열악한 현지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쿠웨이트 LNG터미널 확진자 90명 넘어…대부분 외국인
협력업체 노동자 “출근 압박”…현대 측 “방역 최선 다해”

문제가 된 현장은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NPC)가 남부 알주르에 발주한 LNG 터미널 건설 사업이다. 이 공사는 현대엔지니어링·현대건설·한국가스공사가 2016년 컨소시엄을 구성해 수주했다. 현대건설은 LNG저장탱크 건설을 맡았다. 공사 규모는 3조6000억원으로 연내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지난 2월부터 일해온 ㄱ협력업체 소속 ㄴ씨는 원청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코로나19 방역 조치와 각종 정보 공유에 소극적인 탓에 불안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19일 말했다. ㄴ씨는 “지난달 15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꾸준히 확진자가 나오자 현대건설은 현장 ‘셧다운’을 선언했지만 이후 ‘우리들은 나올 테니 너희들은 알아서 하라’라는 식으로 사실상 출근을 압박했다”며 “필수 인력 이상의 노동자들이 나와서 일했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건설은 지난달 18일 현지 협력업체에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현장을 일시적으로 ‘셧다운’ 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공사는 중단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녹취록에는 지난 9일 현대건설 측과 만난 협력업체 관계자가 “(현대건설 관계자가) ‘셧다운인데, 안 나오면 결근’이라고 한다. (너희들 건강) 책임질 사람 한 명도 없어”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건설 측이 협력업체들에 방역조치를 떠맡긴 채 뒷짐만 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ㄴ씨는 “4월 초부터 현대건설 측에 방역과 관련한 구체적 지침과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공기 못 맞추면 거액의 배상금’ 공사 중단 못하는 현실도
“현대건설 만의 문제 아냐…정부가 외교적 해결 나서야”

현대건설 관계자는 “한국에서 마스크 대량 구매가 막혀 어려웠지만 손세정제를 보내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안 나오면 결근’이라는 관계자 발언에 대해서도 “표현이 과할 수는 있지만, (그 말이 현대건설)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현장에서 셧다운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슬로다운’이 맞다. 며칠만 방치해도 자재가 망가지기 때문에 관리 차원에서 최소 인력만 나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19일까지 이 현장에서 나온 확진자는 모두 91명(완치자 포함)이다. 이곳에는 현대건설 소속 직원 100여명과 협력업체 직원 200명 등 300여명의 한국인이 있다. 인도, 필리핀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는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건설 측은 열악한 현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쿠웨이트는 하루에도 1000명씩 확진자가 나온다”며 “2만명의 인력 중 91명이면 많은 숫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쿠웨이트에서는 지난 18일 기준 1만569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날 하루만 841명이 추가됐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현대건설·협력업체 간 단체채팅방 대화 내용을 보면 현장에서 확진자가 16명째 나온 지난달 27일 현대건설 한 관계자는 연령대별 코로나 사망자 그래프를 보내며 이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ㄴ씨는 “젊은이들은 걸려도 죽지 않으니 일하라는 것 아니면 무엇이냐”고 말했다. 작업은 17일부터 ‘점진적 재개’ 상태다.

현대건설이 파악 중인 현장 내 확진자 91명 중 다수가 외국인이다. 쿠웨이트를 비롯한 대부분 중동 국가 또한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높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지만, 숙소가 붙어 있고 위생 관념도 약하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이 공사를 멈추지 못하는 배경에는 계약서에 명시된 공사 기한을 맞추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지연배상금이 있다. 발주처가 전염병을 천재지변으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꼼짝없이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건설회사 중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계약 조건상 ‘불가항력 조항’으로 포함됐다고 한 곳은 24%에 불과하다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조사도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기, 배상금 등과 관련해 발주처인 KNPC와 협의 중”이라며 “공기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인력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기업노조 김지용 부장은 “발주처인 쿠웨이트 국영기업이 공사를 중단하라고 하지 않는 이상 시공사가 천문학적 배상을 감당하면서 나서기는 어렵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상대 정부와 협상을 하는 등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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