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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부디 지켜주세요…맥박 꺼져가는 독립예술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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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관, #SaveOurCinema 캠페인]

올해 ‘들꽃영화상’ 공로상엔

전국예술영화관협회 선정해

작지만 소중한 예술영화관들

“코로나로 최악의 상황 맞아”

배우 최희서·이제훈·김혜수 등

SNS에 ‘릴레이 응원’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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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도에 딸린 작은 섬 동검도에는 특별한 극장이 있다. 35석 규모의 ‘디아르에프에이(DRFA) 365 예술극장’이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유상욱씨가 운영하는 카페 겸 상영관으로, 직접 고르거나 수입한 예술영화를 1년 내내 상영한다. 100% 예약제인데도 입소문이 나서 관객이 꾸준히 찾는다. 5년 전부터 이곳에서 상영한 스웨덴·덴마크 예술영화 <천국에 있는 것처럼>은 벌써 10만명이나 봤다. 2018년부터 상영해 1만명이 본 영화 <보이콰이어>는 입소문을 타고 지난 14일 전국 멀티플렉스 등에서 정식 개봉하기도 했다. 유상욱씨는 “오래된 예술영화에 대한 향수를 가진 40대 이상 관객이 많이 찾는다. 영화를 본 뒤 극장 앞 바닷가를 거닐며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일반 멀티플렉스에서 보기 힘든 다양성 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독립·예술영화관의 소중함이 새삼 되새김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독립영화상인 ‘들꽃영화상’은 오는 22일 시상식을 앞두고 공로상 수상자로 전국예술영화관협회를 선정했다. 들꽃영화상 운영위원회는 “전국 예술영화관들은 그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스크린을 지키며 한국 다양성 영화의 발전과 예술영화 관객층 확대에 기여해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탄압에 맞서 2017년 출범한 이 협회에는 전국 15개 독립·예술영화관이 함께하고 있다. 최낙용 협회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로 특히 힘든 상황에서 힘을 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소감을 전했다.

국내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시초로 보통 1995년 서울 대학로에서 문을 연 동숭시네마텍을 든다. 이곳뿐 아니라 코아아트홀, 시네코아, 씨네하우스, 뤼미에르극장 등도 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며 1990년대 예술영화 붐을 일으켰다.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가 본격화하며 이들 극장이 거의 사라진 대신 씨네큐브, 하이퍼텍나다 등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후 여러 독립·예술영화관이 문을 열고 닫는 부침을 겪은 끝에 현재 멀티플렉스가 운영하는 곳을 빼면 전국 30여곳의 극장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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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도에 딸린 작은 섬 동검도의 작은 극장에서 시작해 잔잔한 흥행에 성공하며 결국 멀티플렉스 개봉까지 이어진 영화 <보이콰이어>의 한 장면. THE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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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외 지역의 독립·예술영화관은 자칫 소외되기 쉬운 지역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시네필(영화광)이나 영화인의 산실 구실을 하기도 한다. 21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나는보리>의 김진유 감독은 강원도 강릉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비영리단체 ‘강릉씨네마떼끄’에서 다양한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 이후 그는 강릉씨네마떼끄의 독립·예술영화관 설립 운동에 동참해 2012년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개관에 힘을 보탰다. 김 감독은 “강릉에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내가 영화인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지역의 독립·예술영화관은 특히 더 소중한 존재”라고 말했다.

독립·예술영화관들은 요즘 유난히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멀티플렉스 시대 가뜩이나 관객 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최낙용 전국예술영화관협회 대표는 “독립·예술영화관들이 지난 20여년간 살림을 쉽게 꾸린 적이 없었지만, 요즘은 매출이 80% 넘게 떨어지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부대표를 맡은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는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휴관 중이다. 최 대표는 “하반기에 코로나19가 잦아들더라도 전세계 영화시장 마비로 예술영화 수입이 중단된 터라 상영할 영화가 없다”며 “예술영화관의 위기는 1년 넘게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의 영화산업 지원책에서 독립·예술영화관들은 멀티플렉스보다 시장점유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 대책이 손소독제 지원, 방역 지원, 영화기획전 지원, 영화표 할인권 지급 정도인데, 멀티플렉스 위주로 이뤄져 우리에겐 실효성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특히 할인권과 관련해선 지금까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도 자체 결제 시스템을 갖춘 멀티플렉스에선 사용할 수 있지만, 인터파크·맥스무비 등 외부 결제 시스템에 의존하는 독립·예술영화관에선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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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희서가 지난 12일 독립예술영화관을 응원하는 챌린지에 동참하는 편지를 써 화제를 모았다. 최희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관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전 세계의 작고 귀한 영화관들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한국 영화 100년, 우리의 사랑이자 자랑인 영화, 영화관을 응원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글을 게재했다. 최희서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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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영화인들은 에스엔에스(SNS)에 ‘독립예술영화관 챌린지’(#SaveOurCinema) 인증 사진을 올리며 응원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배우 최희서가 지난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코로나19로 인하여 관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전세계의 작고 귀한 영화관들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독립예술영화관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 영화 100년, 우리의 사랑이자 자랑인 영화, 영화관을 응원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린 뒤 다음 주자로 배우 이제훈을 지목했다. 이후 배우 김혜수·신민아, 변영주·김보라 감독 등의 릴레이 응원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원승환 관장은 “독립·예술영화관이 힘들면 독립·예술영화 제작·수입·배급사까지 다 어려워진다”며 “관객들이 티켓 선구매나 후원제도를 통해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혜준 영진위 코로나19대책본부장은 “독립·예술영화관 지원책을 단계별로 준비하고 있다”며 “협의를 통해 그간의 오해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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