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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이창주 공연예술경영협회 회장 “붕괴 위기인 클래식 생태계, ‘약간’의 정부 지원만 있어도 버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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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창주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회장이 지난 1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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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300억원 규모 시장
4월 총매출 2600만원 불과
많은 기획사들 폐업 내몰려

공연장 문 열기 시작했지만
‘거리 두기 좌석제’ 시행으로
공연할수록 손해 발생 구조
정부가 ‘1+1’ 티켓 등 지원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공연예술통합전산망으로 집계한 지난 4월 클래식 분야 총매출액은 2600만원이다. 지난달 26일까지의 집계다. 코로나19 사태로 공연시장이 얼어붙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떨어졌나’ 놀랄 수밖에 없는 수치다. 약 30억원의 매출을 올린 뮤지컬, 가장 힘겨운 분야로 인식돼온 연극의 5억3000만원에 견줘도 한참 밑돈다. 사실상 매출 자체가 멈췄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에서 이창주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회장(66)을 만난 이유다. 이 협회는 클래식 분야의 기획사와 프로듀서들 간 연합체다. 회원사는 약 500곳이다.

이 회장은 국내 클래식 시장의 현재 상황을 “올 스톱”이라고 표현했다. “국내의 클래식 마켓은 티켓 판매 기준으로 연평균 300억원 규모입니다. 뮤지컬 시장의 약 10분의 1로 보면 됩니다. 그중 약 절반은 해외 악단이나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 나머지 절반은 국내 악단과 연주자들의 공연이죠. 일단 지난 2월 하순부터 해외 악단과 연주자들의 내한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국내 단체와 연주자들은 동영상 중계로 버티고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이 회장은 “그것도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지금으로서는 반반의 가능성”이라고 답했다. “해외 단체나 연주자들은 ‘2주 격리’가 관건입니다. 그 지점이 안 풀리면 올 수 없습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언제쯤 진정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히 관련돼 있죠. 그리고 해외 악단과 연주자들은 아시아를 하나의 마켓으로 보지 않습니까? 한국뿐 아니라 일본·중국을 묶어서 투어합니다. 상황이 상당히 복잡하죠. 그렇다고 프로듀서 입장에서 하늘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이 벽에 부딪혔다면, 국내 단체와 연주자들 공연을 더 활성화시켜서 클래식 시장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죠.”

이 회장은 그 해법을 ‘B플랜’이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난관이 있다. 최근 국내 공연장들이 부분적으로 문을 열고 있지만 이른바 ‘거리 두기 좌석제’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진퇴양난”이라고 표현하면서 “공연을 할수록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라고 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는 정부의 지원을 호소했다. “메르스 때 정부가 ‘1+1’ 티켓 제도를 시행했듯이 지금 상황에서도 지원이 절실합니다. 만약 유료 티켓이 500장 나갔다면, 정부가 추가적으로 500장을 지원해주는 방식입니다. 미리 지원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정산하는 시기에 지원해주는 방식이 합리적이죠.”

그는 클래식업계 현황을 설명하면서 “생태계”라는 단어를 빈번히 썼다. “한국이든 해외든 클래식 산업은 민간기획사가 끌고 가는 시스템인데, 현재 기획사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하며 “클래식 생태계의 붕괴”라고 표현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올해 안에 절반은 문을 닫을 겁니다. 기업이 무너지면 고용도 무너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주자의 수입은 무대에서 연주하는 행위에 대한 대가이고, 저희는 그 연주회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당장 생계가 어려운 연주자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생태계를 지켜내는 것은 그 이상 중요합니다. 장기 저리 대출도 기획사 입장에서는 매우 요긴합니다. 소상공인들은 이런 지원을 받고 있는데 저희는 거기서도 배제돼 있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현실입니다.”

협회 회장이라는 직함을 떼놓고 보자면, 이 회장은 한국의 메이저 기획사 가운데 한 곳인 ‘빈체로’ 대표다.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는 그동안 대형 연주회를 빈번히 유치해온 기획사들에 특히 직격탄이다. 빈체로도 그렇다. 올해 상반기 예정했던 연주회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적잖은 액수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국내 애호가들이 손꼽아 기다렸던 안드리스 넬손스와 보스턴 심포니,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무지카 에테르나, 본 베토벤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협연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연주회는 언제일지 모르는 시기로 연기됐다. 하반기 스케줄도 역시 불안하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 런던 심포니와 조성진의 협연, 백건우의 슈만 리사이틀, NDR 엘프 필하모니,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의 베토벤 ‘합창’ 등이 대기 중이지만 현재로서는 연주회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 회장은 자신의 회사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그는 “기획사와 그곳 직원들, 그리고 연주자들은 하나의 생태계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면서 “이 생태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에 약간의 지원을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왜 약간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연간 매출 300억원 규모의 작은 시장입니다. ‘약간’의 지원만 있으면 버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굉장히 많은 기획사들이 올해 안에 무너지고, 결국 연주자들은 무대를 잃게 될 겁니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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