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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피해자 아닌 단체를 중심에…‘과대 대표’된 정의연의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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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일본 돈 받은 할머니들 비판
정대협 모금 문제 제기하니
남산 ‘기억 터’ 명단서 빠져
원치 않은 성노예 표현 고집

소수의견 배제하다 화 자초
우리 사회의 소비 방식 문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위안부’ 피해자의 일관된 목소리는 일본의 배상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의연의 입장과 다른 소수의견이 배제된 것이 문제였다.

지난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정의연의 부실 운영 사례가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이후 정의연 운동방식에 동조하지 않아 목소리를 낼 기회가 적었던 이들의 발언이 주목받았다. 정의연이 포용하지 못한 다양한 피해자들의 삶의 궤적과 목소리가 드러난 것이다.

대표 사례는 고(故) 심미자 할머니 등 7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1995년 일본 민간에서 모금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을 수령했을 때 정대협의 태도였다. 당시 정대협은 이 기금이 일본 정부의 공식 배상금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령을 거부했고, “7명의 할머니들 행동은 올바르지 않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심 할머니를 대표로 하는 33명의 위안부 피해자 모임 ‘세계평화무궁화회’는 2004년 정대협 비판 성명을 내고 소송까지 벌였다.

최근 심 할머니 이름이 정대협이 주축이 돼 만든 서울 남산 ‘기억의 터’ 피해자 명단에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정의연은 “기억의 터 피해자 명단은 공식 기록물이 아니고 예술 조형물이다. 그 명단에는 주요하게 운동하신 몇 명 빼고는 가명이 더 많다”며 “명단에 기록되고 싶어하지 않았던 분들도 있었기 때문이지, 거기에 누가 없다고 지적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정의연이 ‘일본군 위안부’ 대신 사용하는 ‘일본군 성노예’라는 명칭에도 거부감을 나타낸다. 정의연은 성노예라는 명칭이 국제 사회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악행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도 정대협 시절 ‘성노예라는 표현을 써야 미국이 움직인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피해자들의 상처를 헤집고 자존감을 상하게 한다면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지적도 있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인권·민족·외교 등 다양한 논쟁점이 얽힌 문제이지만, 피해자 개인의 ‘삶’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정의연이 약 30년간 운동의 중심에 있다 보니 이러한 점을 잊고, 피해자 개인보다 단체를 ‘과대 대표’했을 수 있다고 봤다.

위안부 운동과 연구에 참여했던 한 연구자는 “과대 대표의 문제는 정의연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한국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소비해온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의연의 운동 이전에 한국 사회가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이후 과도한 민족주의와 결부되며 운동이 큰 힘을 얻었다는 의미이다. 이 관계자는 “정의연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운동 단체를 비롯해 정치, 학계 등 다양한 곳과 교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연은 20일 입장문을 통해 “진행된 상황을 바라보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국내외 시민들, 활동가들, 피해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겸허히 듣고 가슴에 새겨 정의연 설립의 원칙과 정체성에 더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정의연이 후원금 유용이나 회계 부실 의혹에 대해 반박으로 일관하던 것과 달리 이번 사태에 대한 성찰이 주된 내용으로 담긴 입장문이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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