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1 (토)

CEO가 부엌서 연설… '빌드 2020' 온라인으로 여니 참가 16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Close-up] 코로나가 바꾼 테크 행사

- 개발자들이 가보길 소원하는 행사

온라인 개최로 문턱 낮아져 전세계서 10만명 몰려들어

- MS는 더 많은 우군 확보 가능해져

300만원이던 참가비를 무료로… 애플도 내달 무료 온라인 대회

- 자가격리 시대, 소소한 재미 배치

CEO 연설 배경에 수수께끼 숨겨… 주방 연설 중 오븐서 신제품 꺼내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가 19일(현지 시각) 연례 개발자대회인 '빌드(Build) 2020' 기조연설에 나섰다. 그런데 수천 명이 운집한 대규모 전시장의 연단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회사인지 집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온라인 연설을 했다. 시애틀에서 열려온 연례 개발자대회는 300만원에 육박하는 참가비에도 늘 티켓이 조기 매진되는 MS의 인기 행사다. MS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자 과감히 무료 온라인 행사로 전환했다. 이 소식에 전 세계에서 10만명 이상이 한꺼번에 등록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작년 참가자(6000명)의 16배가 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애플도 티켓 구매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연례 개발자대회 WWDC를 다음 달 무료 온라인 행사로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대신 온라인 행사 전환으로 타격을 입을 실리콘밸리 지역 경제를 위해 100만달러(약 12억원)를 기부한다.

조선일보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가 19일(현지 시각) 열린 온라인 개발자대회 ‘빌드 2020’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MS는 나델라 CEO 얼굴 옆에 ‘RGV2cw’란 수수께끼 같은 문자(‘개발자’란 뜻)를 배치해 풀도록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개발자가 한번 가보는 것을 소원으로 꼽는 '실리콘밸리 행사'의 높은 문턱이 코로나 덕분에 낮아지고 있다. 시간·공간·비용 제약 없는 무료 온라인 행사가 코로나 이후에도 '뉴 노멀(new normal·새 기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개발자를 우군(友軍)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의 테크 행사는 이전에 보지 못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그래픽처리장치(GPU) 선두업체 엔비디아는 지난 14일 연례 기술 콘퍼런스 'GTC 2020'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기조연설 장소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젠슨 황 CEO의 집 주방이었다. 황 CEO 뒤로 오븐과 색색깔 뒤집개, 소금·후추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는 "우리의 첫 주방 기조연설(kitchen keynote)"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설 도중 "여기 내가 요리해둔 게 있다"며 오븐을 열고 올해 신제품을 꺼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미국 대부분 지역이 두 달 넘게 자택 격리 중이고, 다들 '집밥 먹기'에 매인 현실을 재치 있게 반영한 것이다.

조선일보

엔비디아 CEO, 주방서 기조연설… 행사 기념품 양말 신고 인증사진 붐… 행사 선물 보내 유대감 형성 (사진 맨 위부터)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캘리포니아주 자택 주방에서 기조연설하는 모습. MS가 제공한 양말을 신고 행사 참가를 트위터에 인증한 한 참가자. MS가 참가자 일부에게 보내준 양말·출입증·도시락통 등 선물세트. /트위터·엔비디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외로이 집에서 행사를 지켜봐야 할 참가자들에게 '깜짝 선물'을 보냈다. 행사 1주일 전쯤 조기 등록자 수천 명에게 대나무 소재 도시락통과 양말, 기념 스티커, 출입 배지가 담긴 선물을 택배로 보낸 것. 집에서 이 양말을 신고, 목에 출입증도 걸고, 도시락통에 밥 먹으며 실제 행사에 참가하는 것처럼 지켜보라는 배려다. 행사 때마다 기념품을 훈장처럼 모으고 자랑하는 걸 좋아하는 테크 업계 종사자들의 마음을 읽은 것이기도 하다. 행사 당일 트위터에는 양말을 신고 행사를 지켜본다는 '인증 사진'이 쏟아졌다.

MS는 나델라 CEO가 기조연설을 하는 동안 뒤편 책장에 '수수께끼'를 숨겨놓기도 했다. 장식품들 사이로 'RGV2cw'라는 정체 모를 문자 조형물을 세워둔 것. 연설을 지켜보던 한 개발자가 "'베이스64(Base64·알파벳, 숫자 등 문자 64개를 활용한 코딩 방식)'로 해독해보니 '개발자(Devs)'란 뜻"이라고 트위터에 올리자, MS 관계자가 "당신이 첫 번째로 풀었다. 축하한다"고 답글을 달았다. 온라인 행사를 준비하며 소소한 재미를 배치한 것이다.

[박순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