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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32] 캐딜락 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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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황금시대(1945~1973)를 대표하는 세단이다. 고급스러운 외관과 커다란 실내, 당시로서는 첨단 장치를 갖춘 꿈의 승용차. “미국인들은 자동차가 아니라 캐딜락을 가지는 것이 꿈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다섯 사람 중 넷은 캐딜락을 탄다”와 같은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 그 상징성은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데이비드 베컴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한 애호가층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절 흑인은 이웃 백인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좋은 동네에 집을 가질 수 없었던 반면, 캐딜락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었다. 영화 ‘그린 북’에 등장하는 1962년 하늘색 모델은 당시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운전사와 차 주인의 우정을 다룬 또 다른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도 캐딜락은 스토리 전개의 중심 매개로 작용한다. 두 영화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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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에 관한 정서와 추억이 1974년 ‘앤트 팜(Ant Farm)’ 그룹에 의해서 예술 작품으로 탄생했다. 텍사스주 북단을 지나는 미국의 문화 역사 도로 ‘루트 66’에 있는 ‘캐딜락 랜치(Cadillac Ranch)’. 벌판 한가운데에 1949년부터 1963년 사이에 생산된 각기 다른 캐딜락 모델 열 대가 한 줄로 일정하게 서 있다〈사진〉. 땅속에 거꾸로 묻은 이유는 차량 지느러미 모양의 진화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 전시물들은 또한 지난 수십년간 방문객들의 그라피티를 위한 캔버스가 되었다. 총천연색 스프레이 페인트가 겹겹이 칠해져 원래 차량 색은 찾아볼 수 없지만, 특별한 날을 위해서는 다른 색이 입혀진다.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장례식 날엔 검은색, 유방암 극복을 위한 행사를 위해서는 핑크색, 그리고 동성애자 퍼레이드 때는 무지개색으로 칠하면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캐딜락 랜치는 일 년 내내 전 세계 방문객을 맞이한다. 달력이나 포토에세이, 인스타그램의 인기 배경이기도 하다. 텍사스의 한없이 넓은 땅과 하늘이 마주친 지평선 위에 고요히 놓인 캐딜락들. ‘큰 땅의 미국’과 ‘번영의 미국’이라는 코드를 대비하는 예술적 상상력이 유쾌하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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