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설왕설래] 정의의 기억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헤움 마을에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조차 부자들이 설교단 옆자리를 차지하자 빈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마을 현자들은 고심 끝에 두 명을 다른 나라에 보내 정의를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타국에 도착한 헤움의 바보들은 상인에게 속아 거금을 주고 정의가 들어 있다는 나무통을 구입했다. 드디어 마을로 돌아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밀봉된 나무통을 열었다. 정의가 있어야 할 통에는 썩은 생선이 들어 있었다. 그러자 마을 대표는 이렇게 선언했다. “긴 여행 때문에 정의가 부패했다. 오늘날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정의는 오직 부패한 정의 한 종류뿐이다.”

류시화 작가가 지은 ‘인생 우화’에 나오는 내용이다. 요즘 정의기억연대가 외치는 정의와 닮지 않았는가.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 명목으로 수십억원의 기부금을 받았지만 이용수 할머니는 난방도 잘 되지 않는 방에서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났다고 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격이다. 할머니들은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인을 “도둑×”이라고 칭했다.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위안부 피해자 기념물을 제작하면서 자신들을 비판한 할머니의 이름을 명단에서 빼버렸다. 갑질이다! 위안부 단체에서 간부를 지낸 사람들은 장관과 국회의원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지만 그들은 입신의 그늘을 만들면서 정의를 기억하자고 소리쳤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세 번 피눈물을 흘렸다. 첫 번째는 꽃다운 나이에 할머니들을 군위안소로 끌고 간 일제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자신을 돌봐준다던 정대협과 정의연이다. 동족이 저지른 두 번의 상처가 할머니들에겐 더 아팠다.

우화 속 마을에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다. “이제부터 모든 음식과 옷에는 ‘최고급’이란 상표를 붙인다. 회당의 모든 좌석은 ‘설교단 옆자리’로 지정한다.” 본질은 고치지 않고 외양만 정의로 덧칠한 것이다. 정의연이 부르짖는 정의가 그런 꼴이다. 후세 사람들이 악취가 진동하는 부패를 우리 사회의 정의로 기억하지 않을까 두렵다.

배연국 논설위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