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모식이 열린 지난 2018년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추모의 집을 찾은 시민이 손자와 촬영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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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황망한 서거 소식에 청주 시민들은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성금은 노 전 대통령 49재를 앞둔 2009년 7월 대통령의 웃는 얼굴이 흉상으로 제작된 표지석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민들은 표지석에 “사랑합니다. 당신의 못다 이룬 꿈 우리가 이루어 가겠습니다”라는 글을 새기기도 했는데요. 이 같은 시민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표지석은 태어나자 마자 이념 갈등의 상징물이 돼 정처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았습니다.

10년 전 오늘 경향신문은 노 전 대통령 표지석이 서거 1주기가 되도록 외부에 공개되지 못하고 청주 시민 추모위원회가 ‘비밀리’에 보관했던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경향신문이 이날 보도한 ‘쓸쓸히 떠도는 노무현 추모 표지석’ 기사에 따르면 표지석은 2009년 9월 충북 옥천에서 열린 언론문화제 때 이틀 동안 공개됐을 뿐 서거 1주기가 되도록 외부에 공개되지 못한 채 한 추모위원이 따로 보관했습니다.

경향신문은 10년 전 오늘 청주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노무현 전 대통령 표지석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쓸쓸히 서거 1주기를 맞게 된 사연을 전했다. 경향신문 2010년 5월21일자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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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위는 당초 표지석을 노 전 대통령 49재가 열린 2009년 7월10일 시민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청주상당공원에 설치하려 했으나, 청주시와 보수단체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이어 청주 수동성당에 임시 설치됐지만 천주교청주교구와 일부 신도들이 이전을 요구해 터를 잡지 못했습니다. 또 청주의 한 사찰과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주민에게 개방된 청남대에 설치하는 것도 추진했지만, 사찰 신도회와 충북도의 반대로 불발됐습니다.

그 후에도 표지석은 한 농가 창고와 공방 등 청주 시내 곳곳을 유랑하다 태어난 지 8년이 지난 2017년 청주시 마동 창작마을 조각공원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노 전 대통령의 사람들도 표지석 처럼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던진 숙제는 여전히 미완의 상태로 남았습니다.

오는 23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년을 맞이합니다. 이에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대통령이자 시민이었고, 봉하마을 주민이자 옆집 할아버지였던 인간 노무현의 정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어쩌면 ‘노무현 정신’을 잘 정리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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