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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정대협의 위안부 쉼터 사업보고서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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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주치의, 주1회 목욕탕까지…

실명으로 할머니 생활고 거론하면서 쉼터 필요성 강조

실제 7년간 이 곳에서 머문 할머니는 없어

미래통합당 정진석 의원실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제출받은 14쪽 분량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쉼터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집’ 사업계획서 내용이 대부분 허위로 드러났다. 사업계획서는 당시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명의로 작성됐다. 정대협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전면에 내세운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10억원의 기부금을 타냈다. 하지만 매각될 때까지 7년간 이 쉼터에 머물렀던 할머니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는 정대협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의 상세 내용.

Ⅱ. 사업계획

1. 사업명 :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을 위한 [치유와 평화의 집]
(Healing & Peace House)
2. 사업의 필요성
1) 대상자 욕구 및 문제점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의 연령은 84세 ~ 94세이다. 홀로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특성상 일반 노인시설에 입주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그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경험은 다른 노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에 어려운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인 전문병원에 입원해서 생활하고 있는 일부 생존자들의 경우 대부분 좀 더 나은 노년의 삶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단지 살아있는 동안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안전한 시설 내에서 ‘삶을 유지’하는 의미가 남아있는 것 같다.

“빨리 죽어야지 이 고통에서 끝나지.”, “더 살아서 뭐해, 이렇게 살 바에야 빨리 가는 게 낫지.” 노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냥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의미와 보람을 느끼고 싶다는 적극적인 삶에 대한 욕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생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과거의 그 ‘주홍글씨’에 대한 치유와 사회적 편견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피해자들과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운동하는 여성활동가들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와 그 치유활동 과정 속에 피해자들의 역사에 공감하고, 그 역사에서 남겨진 상처와 갈등을 ‘평화’로 만들고자 하는 ‘다음 세대’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 형성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비록 혈연이 기본이 된 가족관계는 아니더라도 피해자들의 아픈 역사에 대한 공통인식과 공유가 기본이 되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경험하게 하며, 마지막 생애 순간까지 「어울려 함께 사는 삶」,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삶」,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은 목소리라도 남기고 가는 삶」등 보람을 많이 느끼며 살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런 활동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같은 특수한 경험을 한 여성들의 치유활동, 쉼터활동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2) 지역 환경적 특성
매일 매일 병원출입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병원 시설 등이 가까이에 있는 것이 좋고, 지난 시간들도 사회(사람들)와 고립되어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지난 22년 동안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과정에서 ‘혈연가족’ 만큼이나 친밀감을 만들며 함께 울고 웃으며, 갈등관계 속에서 특별한 감정을 키워온 정대협 활동가들과 함께, 정대협 활동이 진행되는 현장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희망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음을 느끼며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좋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와 평화의 집] (이하 평화의집이라 한다.)은 피해자 / 정대협 활동가 /무형의 활동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센터 속에 포함은 되지만, 그러면서도 담으로 경계가 되어 사적 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3) 경험적 근거
① 생존자 복지활동의 배경 : 정대협은 1990년 11월 16일 발족 이후 생존자복지사업은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진행되어 왔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의 주요목적도 문제 해결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고, 이를 통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대협은 피해자들을 찾아내고, 아픔을 Hearing, Sharing, Healing, Resolving 하는 활동들을 벌여왔다. 피해자들이 생존자로, 인권운동가로 나서서 함께 활동에 참여해왔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정대협의 신고전화에 자신이 피해자임을 신고한 235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실태조사 결과 대부분 주거문제와 외로움 등을 피해자들의 문제로 안고 있었으며, 이 결과에 따라 1992년 당시, 정대협 회원단체 중 하나였던 불교인권위원회 여성위원회가 시설을 건립하기로 하여 [나눔의 집]을 개소하기에 이르렀다.

나눔의집은 경기도 광주 퇴촌면 원당리에 소재하고 있다. 시설이기 때문에 입주를 하게 되면 주소도 모두 나눔의 집으로 옮겨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종교적인 특성 문제, 지리적으로 그리고 의료, 복지, 편의시설 등과 외떨어져 있어서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나 완전히 집을 옮긴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쉼터’로서의 역할보다는 공적인 의미의 역할이 강조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공유되는 공간이 되어갔다. 피해자들의 사적인 공간으로 보호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눔의집에 입소했던 피해자들의 경우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현재 정대협이 운영하는 쉼터 [우리집]에 옮기기도 하였다.

② 쉼터 설립의 배경 : 그런데, 영구임대주택에 독거하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청소년들에게 역사교사로, 수요시위 주인으로, 국제사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일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던 피해자들에게서 ‘적극적 주거복지 실천과 공동체생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경험 하나, 2003년 겨울이 한창이던 어느 날, 서울 강서구 등촌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사시던 ○○○ 할머니(당시 86세) 께서 “수요시위를 끝나고 우리동네에 도착했는데, 어디가 내 집인지 모르겠어.” 이 이야기를 듣고, 홀로 사는 피해자들에게 누군가 함께 살면서 돌봄과 생활지원이 필요함을 느꼈다.

경험 둘, 2003년 ○○○ 할머니는 평택의 한 시골동네에 방 한 칸을 얻어 월세로 살고 있었는데, 연탄불로 밥을 짓고, 난방을 하고 있었다. 늘 집에서는 연탄가스 냄새가 났다. 그 때문인지 할머니는 시름시름 아팠고, 누워계시기 일쑤였다.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며 사는 할머니들에게 안정적인 주거공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경험 셋, 동네 노인정과 복지관에서 어르신나들이 행사를 하고, 위로잔치를 베풀어도 할머니들은 가지를 못한다. ‘위안부’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가는 할머니들이었기에 오히려 불편해 했다. 그래서 할머니들끼리 서로 거리낌없이 함께 생활하며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이런 경험 끝에 2003년 12월, 정대협은 사무실 옆에 주택을 전세로 계약을 하여 쉼터를 개소하여 할머니들의 공간을 만들었다. 할머니들은 그 쉼터를 [우리집]이라고 불렀다. 주소를 옮기지 않고,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그대로 두고, 일주일 혹은 한 달 가량 머물며 피해자들끼리 지내다 가기도 하고, 몇 분 할머니는 이사를 완전히 주소까지 옮겨와 쉼터에 살게 되었다. 편안하고, 안정적이며, 사생활이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쉼터! 같은 피해를 입은 여성들끼리 가족이 되어 서로 돌보며 살고 있는 쉼터! 자원봉사자들과 넒은 의미의 가족관계를 이루어 행복을 나누고 있는 쉼터!를 운영하고자 노력해 왔다.

③ ‘거주’와 ‘쉼터’의 분리 필요성 제기 : 그런데, 쉼터 운영 경험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먼저, [우리집]이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집의 의미와 피해자들이 쉬고 싶을 때 쉬러 오는 쉼터의 의미가 함께 섞여 10여년을 지나오다 보니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고, 쉬러 오는 피해자들의 경우 피해의식을 갖게 되어 발길이 뜸해지는 것. 그리고, 서로 간에 눈치를 주게 된다는 것. 그래서 주거와 쉼터의 공간을 분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쉼터가 전세로 운영되다 보니, 주인과의 관계에서 피해자들에게 맞는 주거공간으로 고치고,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나서 추운 방에서 난로피고 지내보기도 하고, 장마기간에는 거실에 물동이를 대서 지붕틈새로 들어오는 빗물을 받아가며 지내기도 하는 등, 안정된 삶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쉼터가 오히려 피해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해 12월 14일,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00차 수요시위를 맞이하게 되었고, 포기하지 않는 정대협과 할머니들의 활동에 한국사회가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때 기독교계에서 관심을 보여오던 중, 쉼터 이야기를 듣고, 명성교회가 자신들이 구입한 집을 할머니들의 쉼터로 무상 임대해 주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았다. 무상이긴 하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집이 아니고, 남의 집이라는 것과 종교적인 부담감 또한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11월 입주 예정에 있다. 그러나 제공하겠다고 밝힌 주택은 방이 5개에 불과하다. 쉼터에 상주하는 실무자와 사무실 공간을 제외하면 결국 3명의 피해자만 지낼 수 있다. 욕구에 비해 공간이 너무 협소한 것이다. 이에 정대협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주거 [우리집]과 ‘쉼터’ [평화의 집]을 구분하기로 한 것이다.

그 계획은 첫째, 명성교회에서 제공하는 집은 현재 쉼터 [우리집]에 완전 주거하고 있는 세 분 할머니를 위한 집, [우리집]으로 한다. 그리고, 운영 및 관리를 교회가 담당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으로 설득하며 함께 참여하게 만든다.

둘째, [평화의 집]은 더 많은 지역의 피해자들이 쉼터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고, 활동가들과 친교를 나누기도 하고, 쉼터를 찾는 사람들과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기도 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추진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치유는 마침내 평화라고 본다. 그래서 이 치유와 평화의 집은 평화를 궁극적으로 지향해 간다. 과거의 아픔과 화해하고, 과거의 이 여성들의 아픔에 무관심했던 우리 스스로와 화해하고, 그래서, 우리 안에서의 화해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통해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고,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에 기여한다.

평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인 공간과 피해자들의 쉼의 사적인 공간이 적절하게 섞이기도 하고, 별도로 보호되기도 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두 번째 사례는 향후 일본군‘위안부’와 유사한 사례의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 중요한 전례가 될 것이라고 본다.

4) 본 사업과 관련된 지역 복지자원 현황
[평화의 집]은 경기도 안성시에 자리잡게 되었다. 애초의 계획과는 많이 멀어진 감은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자리에서 피해자들이 땅과 함께 살면서,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갈 수 있게 만들면서, 지역복지자원을 새롭게 조성하고자 한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치유와 평화의 집]도 지역복지자원 활동의 중요한 구성원이 될 것이다. 안성시 또는 경기도 내의 복지시설과의 여러 가지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과 자원봉사 인력으로도 피해자들의 경험에 맞는 집단 치유프로그램이 아닌 1:1 치유프로그램, 공동체 치유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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