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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따뜻한 그늘]들녘에 가득했던 곡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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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산강 연작. 2020.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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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훌쩍 지나 고향을 찾았다. 도(道)의 경계만 건너면 닫는 거리인데 그곳으로 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우리 시대가 그렇듯 만고풍상을 겪은 땅,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는데 아픈 기억만 떠올랐기에 찾지 않은 것일까. 얼마 전 우연히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시내 아파트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옛집은 어찌 됐는지 물었다. “아직 그대로 있어야.”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찾아간 옛집은 의외로 골격이 살아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둔 것 같기도 했다. 빈집이 많은 동네를 빠져나오니 영산강이 보였다. 잊고 있었던 터라 갑자기 뜨거운 것이 밀려왔다.

어제는 마음먹고 사진작업을 시작하려고 찾아갔다. 비가 온 뒤라선지 영산강에는 탁한 물결이 넘실거렸다. 강변을 지나다가 들판에 있는 밀밭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예전에는 영산강 유역이 온통 평야여서 여름에는 보리와 밀, 가을에는 벼가 익어 들판을 그득하게 채웠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언제 흰 쌀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을 수 있나 생각했었다.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가도 들녘이 텅 빈 느낌이다. 논농사 대신에 밭농사가 늘어나고 대지는 비닐하우스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비가 내려도 멈출 사이 없이 흘러가버린 무심한 땅에 인적은 드물다.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에 서 있자니 흐르는 시간이 부질없는데, 바람은 다시 밀려와 들녘으로 물결처럼 퍼져갔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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