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조 정치부 기자 |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세금 신고의 달'이다. 많은 국민이 월말 종합소득세·양도소득세 신고 기한을 앞두곤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분주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런 점에서 감사원이 지난 19일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價) 산정에 대한 감사(監査) 결과는 중요했다. 공시가는 가족과 집 그리고 세금 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감사 결과 보고서도 서두에서 "부동산 공시가는 재산세·건강보험료 등 각종 조세와 부담금의 산정 기준이 되고, 기초생활보장 등의 수급 자격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돼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는 속 빈 강정에 가까웠다. 토지·단독주택만 조사하고 정작 국민의 70% 이상이 사는 아파트·빌라 등 공동주택의 공시가는 감사하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공시가가 다른 기현상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부당한 세금을 내는 피해자가 속출하는데도 이를 사실상 나 몰라라 했다.
감사원은 "아파트 공시가는 전수(全數) 조사 방식으로 가격을 산정해 이를 다 조사하기에는 인력과 기간에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감사는 이미 2018년 공시가 논란이 한바탕 일어 감사원도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9년 연간 계획에 잡아놨던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작년 2월 공익감사청구를 했다. 제대로 감사할 의지가 진짜 있었다면 충분한 인력을 확보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감사원은 토지·단독주택 감사를 인력 10명 안팎의 1개 과(課)에 전담시키고, 현장 감사도 11월 13일부터 12월 3일까지 휴일을 제외하고 15일밖에 하지 않았다. 전직 고위 감사관들에 따르면, 통상 주요 감사는 '과 단위'가 아닌 '국(局) 단위'로 2~3개월간 집중적으로 실시한다고 한다. 감사원은 왜 민생과 직결된 공시가 문제를 일년 내내 미루다 연말이 다 돼서야 '과 단위'로 보름 만에 끝냈나? 일각에선 감사원이 아파트 감사로 생길 정부에 대한 여론 악화 등 부정적 파장을 피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요즘 감사원에선 이례적인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 정세균 국무총리가 최재형 감사원장과 단독 회동을 갖고 "감사가 더 이상 적극 행정의 걸림돌이 아닌 촉매가 되도록 하자"고 말해 독립성 훼손 논란이 일었다. 국회 여야가 합의해 요구한 월성 원전 1호기 감사가 두 차례나 연기되고 4·15 총선 전에 열린 감사위원회 회의에선 '보류' 결정이 나는 일도 있었다. 현재 감사원의 2인자인 사무총장은 '조국 민정수석'의 비서관 출신이고, 감사 결과를 최종 심의·결정하는 감사위원회의 여섯 위원 가운데 3명이 민변 출신 등 친정부 인사다. 감사원이 외압을 받는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아파트 공시가 감사를 이대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해선 안 된다.
[노석조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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