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1990년 영화 '사랑과 영혼(원제 Ghost)' 포스터. 위키피디아. |
‘셜록 홈즈’의 코넌 도일(Sir Arthur Conan Doyle, 1859.5.22~1930.7.7)이 말년에 심령학에 심취한 사실을 두고, ‘이성적 탐정’을 낳은 작가의 아이러니라 여기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근 100년의 시차, 즉 당시의 상식과 통념을 등한시한 탓이다. 1920~30년대 심령학은 몽매한 이들이 믿던 미신이 아니었다. 일류 과학자 중에도 진지하게 관심을 갖던 이들이 있었고, 적어도 대중적 논쟁거리가 되기에는 충분한 이슈였다. 게다가 코넌 도일에게는 사연, 즉 아들의 불행한 죽음이 그 배경에 있었지만, 그 바탕에는 1918년 전후의 세계를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은 스페인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H1N1)이 있었다.
스페인독감의 진원지는 확정적이지 않다. 1918년 초 미국 캔자스주의 한 군 기지에서 처음 발병했다는 설이 일반적이지만, 한 해 전 11월부터 미국과 중국 등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병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건 바이러스는 전시 군인과 노동자 동선을 따라 전선 전역으로 퍼졌고, 전후 장병들이 귀환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1차대전 사망자는 약 1,850만명(군인 938만명)이었고, 약 2년간 지속된 스페인독감 팬데믹 희생자는 최대 5,000만명에 달했다. ‘히스토리 채널’은 팬데믹 기간에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심령학(심령술)이 크게 유행했고, 거기에는 전쟁과 전염병으로 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 공포와 죄의식이 깔려 있었다고 전했다.
저명 물리학자 올리브 로지(Oliver Lodge, 1851~1940)는 1915년 아들을 벨기에 전선에서 잃었다. 그는 헤르츠와 별도로 전자기파의 존재를 규명했던 일급 학자였지만, 1910년대 말부터 유럽과 미국을 돌며 실재하는 사후세계와 사자와의 소통 사례를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지식사회에 소개하곤 했다.
코넌 도일은 전처(루이스 호킨스)와 낳은 아들을 전쟁으로 잃었다. 1916년 프랑스 전선에서 부상한 뒤 치료를 받다가 1918년 폐렴으로 숨졌으니 바이러스 사망일 확률이 높다. 후처의 시기심 때문에 아들을 푸대접했다는 설이 사실이라면, 도일에겐 숨진 아들에 대한 죄의식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영매였을 것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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