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문구점, 푸드트럭 매출 '0원'
'부부의 날' 맞아도 손님없어 썰렁한 꽃집
예약 발길 끊긴 여행업계는 존폐기로
지난 2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이화동 서울사범대 부설초등학교를 마주하고 있는 법대문방구. 28년째 이 가게를 운영하는 금종순(72) 씨는 "재난지원금이 풀린다는데 하나도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알록달록 스티커와 사인펜엔 먼지만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IMF(외환위기) 때도 공책과 연필을 팔아 자식 셋을 모두 가르쳤는데, 지금은 손님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가 문을 닫은 탓이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28년째 법대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금종순 할머니는 지난 4월 매출이 0원이라고 토로했다. "초등학교 개학을 앞두고 최근에서야 한 학부형이 처음으로 5만원어치 문구를 사간게 이달 매출의 전부"라며 "재난지원금이 풀렸다는데 아이들이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라서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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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곳간 문을 열어 긴급재난지원금을 풀지만 '코로나 보릿고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20일까지 정부가 책정한 재난지원금 14조원 가운데 약 11조5200억원이 풀렸다. 가구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84.3%(1830만 가구)에게 가구당 최대 100만원이 뿌려졌다. 정부가 준 재난지원금에 편의점·동네마트·재래시장엔 온기가 돈다. 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상인들은 "여전히 매출 0원"이라며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던 금씨는 "올해 4월까지 매출은 '0원'이었다"고 했다. 다음 주 초등학교 순차 개학을 앞두고 얼마 전 한 학부모가 5만원 어치 학용품을 사 간 게 이달 매출의 전부다. 한 달 월세는 60만원. 버는 돈이 없으니 금씨는 월세 40만원을 자식들이 보낸 생활비에서 떼 주인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금씨는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들은 재난지원금을 안 쓰니 문방구에선 소용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쌀 핫도그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박준서씨 이달 매출은 '0원' 이다. 박씨는 "재난지원금이 풀려서 일부 상인들은 숨통이 트인다는데 하나도 체감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사진 박준서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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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푸드트럭, 공연 연습도 어려운 '연극'업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만난 박준서(36) 씨는 "코로나19가 더 길어질까 봐 정말 두렵다"고 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6년간 푸드트럭을 몰며 쌀 핫도그를 팔아왔다. 코로나19 전만 하더라도 한 달 매출은 3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되면서 그의 푸드트럭은 갈 곳을 잃었다.
이달 매출은 '0원'이다. 그는 "영업을 못 하니 생계를 어떻게 이어나갈지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시에서 하는 '밤 도깨비 시장'처럼 행사가 열려야 장사를 할 수 있는 데다, 각종 규제로 푸드트럭은 허가받은 장소에서만 영업할 수 있으니 돈을 벌 길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재난지원금덕에 숨통이 트인다는 가게도 있지만, 푸드트럭엔 도움이 안 된다"며"푸드트럭 폐업을 했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존폐기로에 놓인 자영업자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리의 대출지원과 같은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두달에 걸쳐 140만원에 달하는 '생존자금'을 소상공인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정부와 자치단체가 풀어놓은 재난지원금을 소비자들이 직접 찾아와 쓸 수 있는 길이 생기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화곡동에서 인쇄업을 하는 임모(46)씨에는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을 쓰더라도 기본 생필품에 쏠려있다"며 "행사가 있어야 일감이 들어오는 인쇄업엔 하나도 효과가 없다"고 했다. 돌잔치나 결혼식, 기업들의 행사까지 싹 사라지면서 지난해보다 일감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공연무대가 사라진 극단 사정도 마찬가지다. 와치트켓시어터컴퍼니를 운영하는 채정규(62) 대표는 2월부터 매출 제로 상태다. 연극보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다. 그는 오는 7월부터 연극 공연을 무대에 올리면 수입이 생기지 않을까 싶지만, 비용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1일 오후 꽃집이 몰려 있는 대전시 서구 둔산동의 상가. 부부의 날인 이날 꽃집을 찾는 손님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2월부터 매출이 줄기 시작한 꽃집에서는 재난지원금이 풀린 뒤에도 손님이 늘지 않았다고 한다. 신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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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돌지 않는 것은 꽃집도 마찬가지다. 21일 정오쯤 꽃가게가 몰려있는 대전시 서구 둔산동의 한 상가 1층. 이날은 '부부의 날'이지만 손님 발길은 뜸했다. 간혹 찾는 손님들은 1만~2만 원대 꽃을 사거나 가격만 물어보고 발길을 돌렸다. 한 꽃집 사장은 "2월부터 지금까지 겨우 임대료만 내는 수준으로 버티고 있다"며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재난지원금을 풀었지만 정작 우리 같은 업종에서는 남의 집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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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전화도 거의 없어요" 울상짓는 여행업계
재난지원금 사용이 불가한 여행업계도 울상을 짓고 있다. 수혜 대상이 아닌 데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출·입국 통제 등 해외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서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서 5년째 여행사를 운영하는 고모(43) 씨는 3월~5월 사이 계약 건수가 3건에 불과하다. 계약금은 한 건당 20만원으로 총 60만원에 불과하다. 이 업체는 신혼부부 전문 여행사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한 달 평균 35~40건의 계약을 유지해 왔다. 고씨는 “5월에는 9월~11월에 결혼이 예정된 예비부부들의 예약을 받아야 하는데 코로나 영향으로 문의 전화가 거의 없다”며 “예약 건수가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해 10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부터 직원 2명에게 유급 휴가를 주고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한 달에 사용료 3만원을 주고 쓰는 복사기도 반납할 예정이다. 직원 급여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고씨는 “이번 달 상황이 좀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는 바람에 6~7월 상황을 더 봐야 할 것 같다”며 “관광진흥개발기금 특별융자로 3000만원을 받은 놓은 게 있어서 몇달은 버틸 것 같은데 그 이후가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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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영세 소상공인 직접 지원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역경제 활성화란 목표를 두고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지만, 업종별로 재난지원금 효과를 느끼는 온도 차이가 크다"며 "사회안전망 설계 차원에서 영세 소상공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재난지원금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사각지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금이 아닌 카드 포인트 충전, 지역 화폐 지급 방식을 선택하면서 가맹점이 아닌 경우엔 재난지원금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업종들이 발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 등 유럽국가는 코로나19로 존폐위기에 놓인 영세 소상공인을 파악해 직접 지원을 하고 있다"며 "지원이 필요한 곳에 온기가 갈 수 있도록 '핀셋' 지원을 적절하게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예 기자, 대전·청주=신진호· 최종권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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