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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미국 탈중국 동맹, 한국 동참 압박…미·중 딜레마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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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경제번영 네트워크' 구상 한국 참여 압박

중앙일보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차관이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 4차 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이동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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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미ㆍ중 정면충돌의 시계를 앞당기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전 세계 시장에서 중국을 고사시키는 작전으로 돌아서면서다.

미국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우방국들로만 산업 공급망을 개편하는 ‘경제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구상하고 있다. 이에 한국이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박도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성장ㆍ에너지ㆍ환경 담당 차관은 20일(현지시간) 국무부의 아태지역 언론 브리핑에서 “지난해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 한국과 ‘경제번영 네트워크’ 구상에 관해서 얘기를 나눴다”며 “미국의 글로벌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은 자유 진영을 보호하는 공급망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고위 관리가 미국의 새로운 경제·안보 구상인 '경제번영 네트워크'를 실명으로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라크 차관의 발언은 한국에 이 같은 구상을 이미 작년에 설명했다는 취지다. 반면 외교부는 지난해 11월 크라크 차관과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이 진행한 제4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 정책의 접점을 모색하고 양국 간 경제 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한다”는 수준만 언급됐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크라크 차관이 이번에 이를 기정사실로 해 미국의 차기 경제 구상에 한국의 참여를 압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라크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경제번영 네트워크’는 민감한 산업 영역에서 신뢰할 수 있는 특정 국가들과 기업들을 묶기 위한 것”이라며 “이 네트워크는 투명성과 법의 지배 등 민주적 가치 하에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이 지난해 12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협상 지위를 포기한 것을 언급하면서 “중국의 진정한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이 주장하는 '경제번영 네트워크'의 핵심은 한마디로 '중국만 빼고(Anything but China)'다. 크라크 차관은 “중국 공산당의 은폐ㆍ강압ㆍ포섭이라는 세 가지 전략은 결과적으로 ‘퍼펙트 스톰’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통제돼야 할 곳에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됐으며, 중국의 이른바 '가면 외교(face-mask diplomacy)'는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강압과 회유의 도구일 뿐이며, 많은 기업ㆍ국가들이 이런 공격 전술을 알아차리게 됐다는 것”이라면서다. 크라크 차관은 “중국이 공급망을 장악해 조직적으로 경제권역들을 포섭해왔다는 게 폭로됐고 모두가 비상이 걸렸다”라고도 했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주로 화웨이 등 IT기업 퇴출에 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을 제외한 경제 블록을 구성하는 것으로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이런 조짐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월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직후부터 감지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미국의 요청으로 3월 20일부터 한국ㆍ일본ㆍ인도ㆍ호주ㆍ뉴질랜드ㆍ베트남 7개국 차관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연결고리로 매주 유선회의를 하고 있다. 표면상 코로나19 협력을 위한 실무 회의처럼 보였지만, 미국의 '큰 그림'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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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4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차관과 악수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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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7개 국가를 일일이 언급하며 “이들과 이번과 같은 사태(코로나19)를 방지하기 위해 글로벌 공급망을 어떻게 재편할지에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달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미 관리를 인용해 “미국이 믿을 수 있는 파트너들로 (경제) 동맹을 만들고 싶어한다. 일명 '경제번영 네트워크'”라고 소개했다.

그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문이 코로나19로 닫히면서 촘촘하게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이 휘청이자, 미국이 위기감을 느꼈다는 해석이 나왔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 IT기업 화웨이를 몰아내려는 시도도 강도가 세지고 있다. 미 상무부가 15일(현지시간) 화웨이에 납품하는 해외 기업의 반도체 칩에도 미국 기술이 들어가선 안 된다는 신규 규제를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 크라크 차관은 20일 브리핑에서 “오늘 나는 모든 동맹국과 파트너들에게 자국 외교 시설에 화웨이와 ZTE 등의 장비를 배제하는 미국의 ‘5G 클린 경로 구상’에 동참할 것을 요구(call on)한다”라고도 말했다. ‘5G 클린 경로 구상’은 전 세계 미 대사관 등 외교 시설 주변에 화웨이와 ZTE 같은 업체를 제외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미·중 양쪽에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향한 압박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국은 올해 문재인 정부 들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통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사태 이전으로 한·중 경제 교류를 복원하려 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미국은 이번 기회가 삼성·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호재가 될 것이란 점을 부각하고 있다. 20일 크리스토퍼 포드 미 국무부 차관보는 “각 나라와 기업들이 중국 IT 기업들의 잠재적인 ‘정보 훔치기’ 위협을 깨달을수록, 중국식 생태계 밖에서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공급 업체를 찾게 될 것이고, 이는 삼성과 같은 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코델 헐 미 상무부 차관보도 미 상무부의 화웨이 규제와 관련해 “이번 조치는 화웨이에 맞춰 설계된 반도체 칩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한국의 SK하이닉스 사례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당근 발언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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