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등 반발에 의료법 개정 대신
전화상담·처방 범위 확대 논의 급물살
내달 산업육성 대책에 반영할 듯
당정 “비대면 확대 불가피” 강조에도
의료 영리화 등 우려 못 벗어나
전문가 “산업 차원 접근에 갈등 키워
공공성 확보 위해 사회적 논의 먼저”
정부·여당이 코로나19 2차 유행에 대비한다는 목표를 앞세우며 원격의료 도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은 의사협회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예상되는 의료법 개정보다는, 코로나19로 인해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전화 상담·처방의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정부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원격의료 도입이 필요하다면 이전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부처 주도의 신산업 육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비대면 의료로 포장된 원격의료 21일 <한겨레>가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다음달 초 나올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비대면 산업 육성의 구체 방안으로 비대면 의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날 “(비대면 진료의 방향은) 현행 의료법 안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전화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가능한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감염병 대응 차원에서 비대면으로 호흡기 환자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 등을 포함시킬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진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처방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의 재진을 위주로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다. 2월24일부터 5월10일까지 26만건의 전화 상담·처방이 이뤄졌다.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호흡기 전담 클리닉’을 지정해 운영하기로 한 바 있는데, 여기에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인프라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법 개정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당장 추진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감염 대응을 위해 병원 이용을 줄이자는 취지가 있는 만큼, 전화 상담·처방의 허용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부가서비스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코로나19 2차 유행을 대비해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통신망과 같은) 비대면 의료 플랫폼 구축을 위한 예산을 일부 반영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런 기류에는 의료법 개정이 추진되더라도 매우 제한적인 내용이 담길 것이기 때문에, 한시적이나마 현재 시행하는 전화 상담·처방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실효가 클 것이란 판단도 깔려 있다. 2016년 국회에는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2018년 8월 당정청 협의로 “도서벽지, 원양선박, 군부대, 교정시설 등 4곳에 한정해”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하기로 한 뒤 관련 시범사업만 벌여왔다.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사협회의 거센 반발과 의료영리화로 이어질 것이란 시민사회단체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 산업 육성 앞세우면 갈등만 반복 ‘비대면 진료’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원격의료 도입이 경제부처 주도로 새로운 산업 육성 차원에서 추진되는 데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원격의료 도입은 속도전에 나설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경우와 수행할 의료기관 범위, 오진 가능성과 대형병원 쏠림 현상, 의료영리화 가능성 등 부작용 해소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정말 코로나에 대비해 병원 이용을 줄이는 보건의료 차원의 목적이라면 기재부 차관이 복지부보다 먼저 나서 ‘적극 검토’를 언급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복지부가 주도해 구체적인 모형을 내놓고 논의에 부쳐야 한다”며 “혹여 규제 혁신, 산업 육성 프레임이 앞서 나가면 사회적 갈등만 반복될 것”이라고 짚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코로나 상황만 보면 비대면 진료 강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이를 빌미로 원격의료를 확대하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며 “의료 취약지, 취약층을 중심으로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이정훈 성연철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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