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그러니’ 등 편곡, 새 앨범 만들어
10년간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복귀 무대서 또 공황 발작 증상
제 모습, 경단녀에 위로됐으면
건강한 가정에서 좋은 노래 나온다
‘엄마 발라드 가수’는 이런 거다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게 사명
리메이크 앨범 내고 복귀한 가수 이수영. 뉴에라프로젝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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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는 오래된 사진첩과도 같다. 지난날의 아득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사랑에 아파한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춘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아픔을 달랬고 위로를 받았다. ‘발라드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가수, 바로 이수영이다.
“떠나간 사람을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적 있으시죠? 그 노래 좋아하는 분들은 대체로 비슷한 경험이 있더라고요.”(웃음) 지난 14일 전화로 만난 이수영에게 자신의 노래 가운데 ‘스치듯 안녕’을 즐겨 들었다고 하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지난 7일 이 노래가 포함된 스페셜 앨범 <마스크>를 발표했다. 1999년 데뷔 이후 다른 가수의 곡을 리메이크해 부른 적은 있지만, 자신의 노래를 새롭게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많은 대표곡들 가운데 ‘덩그러니’ ‘라라라’ ‘스치듯 안녕’ 3곡을 새로 편곡해 담았다. 지난 3월 발표한 신곡(‘날 찾아’)이 오랜 공백을 깬 ‘신호탄’이라면, 이번 리메이크 앨범은 팬들에 대한 ‘선물’이다. “10년 넘게 기다려준 이들에게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준비했어요.”
리메이크 앨범 내고 복귀한 가수 이수영. 뉴에라프로젝트 제공 |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이들 3곡의 정서는 원곡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본적인 변주 외에 눈에 띄는 것은 원곡을 풍성하게 해줬던 오케스트라 등 악기 소리가 단출해졌다는 점이다. 악기 소리가 물러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다름 아닌 이수영의 목소리다. 원곡보다 그의 목소리가 더욱 부각되는 이유다. “원곡을 만들 때 100만원을 썼다면, 지금은 10만원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제 목소리라는 악기를 더 쓸 수밖에 없었죠.”
2000년대 가요계에서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독특한 음색과 창법으로 데뷔곡 ‘아이 빌리브’(1집)를 시작으로 ‘스치듯 안녕’(2집), ‘그리고 사랑해’(3집), ‘라라라’ ‘얼마나 좋을까’(4집), ‘덩그러니’(5집), ‘휠릴리’(6집), ‘그레이스’(7집) 등 발표하는 곡마다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09년 9집 앨범을 끝으로 그는 자취를 감췄다. 소속사와의 분쟁, 결혼과 출산 등을 거치면서다. 간간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드라마 오에스티(OST)에 참여했지만, 최근 신곡과 리메이크곡을 들고 컴백하기까지 무려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리메이크 앨범 내고 복귀한 가수 이수영. 뉴에라프로젝트 제공 |
공백기 동안, 그는 아팠다. 몸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덮친 것이다. 십여년 전 수억원의 사기 피해로 소송을 당하고, 무대를 떠나 있으면서 온 변화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진정됐지만, 여전히 그는 이 병과 싸움 중이다.
특히, 가장 뼈아픈 대목은 데뷔 때부터 수천번 선 무대가 이제는 ‘도전’이 됐다는 점이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제이티비시>(JTBC) 예능프로그램 <슈가맨3>에 출연했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무대에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무대에서 공황발작이 왔어요. 10년 동안 약도 먹고 많이 좋아졌는데, 방송 복귀하면서 부담이 된 거죠. 참 많이 내려놨는데…. 너무 많은 눈이 저에게 쏠린다고 생각하니, 증상이 확 나타나더라고요.” 당시 그는 공황 증상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모르고 있었다. 객석에서 눈물을 보이는 관객이 있었다는 것을. 그의 노래가 여전히 사람들을 울린다는 것을. “조만간 다른 음악 방송 출연이 예정돼 있는데, 제겐 또 도전이에요.”
리메이크 앨범 내고 복귀한 가수 이수영. 뉴에라프로젝트 제공 |
육아로 오랫동안 떠나 있다 복귀한 뒤 공황장애로 무대에 서는 것이 힘겨워지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이해다.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도 생겨났다. “20~30대에 처음 일을 배울 땐, 헤매더라도 ‘나 왜 이러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런데 복귀해서는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큰일 났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좌절하는 또래 엄마를 많이 봤어요. 저는 처음과 복귀했을 때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렵고 헤매는 게 당연한 거예요. 저 보세요. 복귀하며 공황발작 상태에서 노래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 모습이 좌절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수로서 감추고 싶은 이야기일 텐데, 그는 인터뷰 내내 솔직했다. 자신의 상황을 애써 감추지도, 포장하지도 않았다. 가족의 사랑 속에서 마음의 병과 싸우며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건강한 가정에서 좋은 노래가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이고, 그 속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노래로 녹여내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 엄마 발라드 가수’는 이런 모습이라는 걸 삶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요. 그것이 저의 ‘사명’이에요.” 그 사명에 다가서기 위해 그는 오늘도 무대에 오르는 연습을 한다. 서두르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다. 그의 삶은 이미 노래에 스미고 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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