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랜선 공연 인기..."한국 이미지 좋아져 자부심"
2011년 발매한 앨범, 빌보드 클래식차트 1위
유니버설뮤직그룹과 글로벌 레이블 파트너십 기대감
내년 데뷔 20주년 앞두고 준비중 프로젝트 산더미
[서울=뉴시스] 이루마. 2020.05.22. (사진= 마인드테일러뮤직 제공) photo@newsis.com |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본인도 모르게 삶에 스며들어 있는 음악의 위대함.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이루마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깨닫는다.
'키스 더 레인' 등 한 때 '있어 보이고' 싶은 이들이 싸이월드 BGM, 그리고 홈페이지 배경음악으로 설정했던 곡들이 그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세미 클래식'이라 불리던 이루마의 음악들은 이제 '네오 클래식'으로 통한다.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 아이슬란드의 올라퍼 아르날즈와 같은 카테고리로 묶인다.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더니, 지난 2월 이루마의 데뷔 1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 '더 베스트 레미니센트'(The Best Reminiscent 10th Anniversary)가 미국 빌보드 클래식 앨범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발매한 앨범으로 '키스 더 레인', '리버 플로스 인 유' 등 그의 명곡들이 실렸다. 9년 만에 역주행,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오는 23일자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이 차트에만 19주째 머물고 있고, 1위를 차지한 것은 통산 11번째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반 등과 수위를 다퉜다. 또 이루마가 연주한 '리버 플로스 인 유' 유튜브 동영상은 현재 조회수 1억뷰를 넘겼다.
K팝, K방역뿐만 아니라 K 네오클래식의 한류스타가 조용히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최근 논현동 유니버설뮤직에서 만난 이루마는 "1위를 했다는 숫자적 의미보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듣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면서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앨범과 나란히 했다는 거 자체가 영광"이라고 겸손했다.
[서울=뉴시스] 이루마 1위. 2020.05.22. (사진= 빌보드 클래식차트 캡처) photo@newsis.com |
미국뿐만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숱하게 콘서트 요청이 온다. 아제르바이잔 같이 평소 우리와 멀게만 느껴진 나라에서도 이루마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팬들을 만날 기회가 미뤄졌다. 러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예정됐던 공연이 연기됐다.
대신 온라인을 통해 팬들과 소통했다. 지난 9일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연대 대응 기금을 지원하기 위해 페이스북이 개최하는 온라인 콘서트에 참여했고, 15일에는 유니버설뮤직의 스튜디오 기와(STUDIO KIWA)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 연주 영상을 공개했다.
"직접 팬 분들을 뵙지 못해 아쉬웠지만, '랜선 공연'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세계 곳곳에 제 연주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였죠." 온라인 상에서 자신의 음악이 퍼져나가면서 빌보드 클래식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유튜브 조회수도 올라갔다고 긍정했다.
하지만 이루마의 음악은 온라인 감상용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 피아노 입문자들의 통로로 통한다. '21세기 피아노 교본'으로 불리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이루마 곡의 악보를 구하고 싶다는 글이 쏟아진다.
'클래식 음악의 성지'인 오스트리아 빈의 악기점 쇼윈도에 이루마의 악보가 전시돼 있기도 하다. 그래서 22일 발매하는 EP '룸 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에는 팬들을 위해 악보를 처음부터 함께 실었다.
"해외 사람들 사이에서 (코로나 19 방역 조치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더 좋아졌어요. 더 자부심을 갖고 연주할 수 있게 됐죠. 아울러 제 연주 음악에는 가사가 없다 보니 국적을 떠나서 더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서울=뉴시스] 이루마. 2020.05.22. (사진= 마인드테일러뮤직 제공) photo@newsis.com |
이루마가 대중적인 곡만 만들고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2006년 11월 발매한 다섯번째 정규 음반 '히스 모놀로그'(h.i.s monologue)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통한다. 서정적인 이루마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 등이 사용한 타악기적인 '프리페어드 기법'으로 피아노 음색에 변화를 준 것이다. 퍼쿠션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연주법이다.
"5집 전까지 1~4집은 저를 알리기 위한 앨범이었어요. 군 입대 전에 발매한 5집은 '나는 이런 음악을 하고 싶어'라는 것을 보여준 거죠."
이루마다운 곡들을 선보여도 통찰은 이어진다. 예컨대 이번 EP에 실린 '룸 위드 어 뷰'는 작년 8월 공연을 위해 이탈리아 남부를 방문했을 때 만든 곡이었다. 올리브가 가득한 농장의 풍경을 바라보며 '방'을 주제로 만든 곡. 우연찮게 자가격리가 중요해진 '코로나 19' 시국과 맞아떨어졌다. 사운드에 공간감을 배이게 한 곡으로 몽환적인데 물리적, 심리적으로 갇혀 있는 지금의 청자들에게 위로를 안긴다.
역시 신곡인 '선셋 버드'는 반대로 날아가는 새에 대한 음악이다. 영국에서 유학을 하며 항상 집을 그리워한 이루마의 음악에는 새라는 요소가 직접적으로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새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들이 많다. '선셋 버드'는 움직일 수 없는 지금 사람들의 자유롭고자 하는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
이루마는 "지금 시기에 예술인의 존재가 더 부각이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일종의 치유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의 심리를 보듬어주는데 효과적인 것이 예술이잖아요. '음악하기를 잘 했구나'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뉴시스] 이루마. 2020.05.22. (사진= 마인드테일러뮤직 제공) photo@newsis.com |
이루마는 말끔한 외모, 고급스런 이미지 때문에 편하고 얌전하게만 음악을 해왔을 거 같지만 다양한 일들을 겪었다. 영국 런던에서 유학하던 시절, 전자음악 사운드를 접목한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을 위해 이곳에 작업하러 온 신해철의 현지 가이드 역을 스스로 맡았다. 그가 학생이던 시절이었다.
또 2000년 런던에서 유학을 하던 이지나 연출이 현지에서 오태석 원작의 연극 '태'를 배우 이정화, 홍록기와 올릴 때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로에 잠시 있었고, 음악 관련 회사 인턴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1년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또 이루마는 대중음악사에서 기억할 만한 곡들도 작업했다. 가수 김연우가 2004년 발표한 정규 2집 '연인'에 실린 연주 음악 '몇해전 삼청동 거리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가 그의 곡이다. '토이' 유희열이 프로듀싱을 맡은 앨범이다.
김연우가 2006년에 발표한 정규 3집에 실린 노래 '흐려진 편지 속엔' 작사, 작곡자가 또 이루마다. 이와 함께 백지영의 '싫다', 에일리의 숨은 명곡으로 통하는 '하이어', 그룹 '샤이니' 멤버 종현이 공동 작업한 '너와 나의 거리' 등도 이루마의 손길을 거쳤다.
보컬그룹 '2AM'의 '내게로 온다'는 이루마가 작곡가 '투페이스'와 결성한 작곡팀 '마인드 테일러'의 작품으로 2013년 당시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준비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의장이 믹싱을 직접 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이루마. 2020.05.04. (사진 = 유니버설뮤직 제공) 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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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음악은 여전히 많고, 저는 아직도 부족하죠. 지금 하고 싶은 장르는 영어로 된 팝이에요. 글로벌 시대다 보니까 욕심이 생기죠. 빌보드 '핫 100'에 싸이와 방탄소년단이 올라가고 아시아 작곡가로 박진영 씨가 주목 받고 있는데, 제가 더 할일이 있으면 해요."
유니버설뮤직그룹과 글로벌 레이블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 그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해외 활동을 하는데 서포트가 될 것 같아요. 음원 유통이 세계적이잖아요. 세상이 글로벌해졌고 제 음악을 더 많은 분들에게 들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해요."
내년 20주년을 앞두고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산더미다. 버클리 출신의 미국 교포 가수 노래를 6월 중에 선보일 예정이며 마인드 테일러 작업도 이어간다. 연말에는 깜짝 가요 작업도 공개할 예정이다. '히스 모놀로그' 같은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담은 앨범도 선보이고 싶다. 또 내년에는 이루마가 프로듀싱한 연주자도 선보일 예정이다.
물론 기존에 그가 만든 음악들의 생명력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스치고 긁히며 깨져오는 가운데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중요한 악절들로 이미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래된 팬들이 아이 엄마가 됐는데 그들의 학창시절과 연애시절에 제 음악이 깊게 박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팬분들의 일상에 제 음악이 박히고 스며들어가 있는 거잖아요. 공기 같은 음악, 없어서는 안 될 거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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