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회의장 퇴임 앞두고 마지막 기자회견
“55년 정치인생 후회 없고 행복한 길이었다” 소회
‘朴 사면’ 직접 언급… 21대 국회에 “협치해 달라” 당부
“177석 민주당 오만하면 열린우리당처럼 지리멸렬”
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회견에 참석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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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김대중 대통령 당선되던 날이 가장 기뻤고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 날이 가장 슬펐다.”
동교동 직계로 출발해 친노 좌장을 거쳐 친문으로 정치생활을 마감하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퇴임을 앞두고 남긴 말이다. 20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를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그는 21일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들과 만나 떨리는 목소리로 “기어이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며 정계를 떠나는 소회를 밝혔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김종필 전 총리의 말을 꺼내며 회한에 잠기기도 했다. 55년간 이어진 정치역정을 끝낸 노 정치인이 국회의장으로서 남긴 마지막 문장이다.
◇“박근혜 사면, 타이밍 놓치면 의미 없어”
문 의장은 의회주의자이자 DJ(김대중)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인연을 맺으며 민주당 역사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 DJ 손에 이끌려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지난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의 대선기획단장을 맡았다. 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과 함께 국정 밑그림을 그렸다.
문 의장은 “인생 자체였던 국회와 정치를 떠나는 것이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다가올 낯선 미래와 새로운 길이 설렌다”며 “아쉬움이 남지만 정치인생은 후회 없는 삶이었다. 쌓아올린 보람이 가득했던 행복한 정치인의 길이었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강한 인상과 달리 화합과 협치를 강조하며 갈등 중재자로 나서 ‘국회 포청천’(중국 송나라 시대의 청렴한 판관)이라 불렸다. 정계를 떠나는 순간에도 화합과 통합을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검토해야 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그는 “지금이 통합의 관념으로 전환할 적기”라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나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문 대통령의 권한인 만큼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는 의미이며 꼭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문 의장은 국정농단 사태의 원인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꼬집으며 개헌에 힘을 실었다. 그는 “촛불혁명을 완성하려면 개헌을 했어야 했다”며 “총리 권한을 확대해 책임총리제로 가야하는게 내 주장이다”라고 강조했다.
◇DJ부터 盧·文까지… ‘국회 포청천’의 퇴장
문 의장은 자신이 국회의장을 맡았던 지난 2년간 가장 기뻤던 날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상정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날이라 꼽았다. 하지만 처리 당시 통합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의장석 점거 속 강행처리한 점은 “(법안 처리는)기뻤으나 서러웠던 순간”이라 돌이켰다.
오점으로 남은 건 4·15총선 민주당 공천과정에서 아들인 문석균 씨를 둘러싼 ‘아들 공천’ 논란이다.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의정부에 문 씨가 출마하자 세습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문 의장은 “아들을 출세시키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쓰라림을 느꼈다”고 말했다.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들었던 20대 국회를 사실상 마무리한 지금 다가올 21대 국회를 위한 충고도 남겼다. 문 의장은 “여당은 여당다워야 하고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주장이 서로 다퉈가며 하나의 결론을 향해 가는 것인 만큼 대안을 내면서 서로 비판하는 국회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여야의 정쟁으로 국회가 식물상태가 된 것에 대한 자기 반성이다.
아울러 177석을 얻은 집권여당을 향해서는 “밀어붙일 생각하지 말고 합의를 통해 결과를 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오만해서 하루 아침에 궤멸해 지리멸렬하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대승을 거둔)지금이 오히려 통합에 방점을 찍어야 할 때”라 강조했다.
문 국회의장은 오는 29일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임기를 마친다. 이후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자 정치적 뿌리인 의정부로 돌아간다. 그는 “10평짜리 밭이 달린 작은 집에서 꽃을 가꾸며 살고 싶다”며 “쌈을 좋아하니 쌈채소를 키우면서 살고 싶은데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언론인을 향해 “시대정신을 선점하기 위해 정치인과 매일 다투는 동업자가 되어달라. 늘 깨어있으면서 방향감각을 잃지 않게 더듬이를 닦아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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