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지음/천년의상상·1만4800원
<모던 하트>로 201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가 정아은이 <엄마의 독서>(2018, 한겨레출판)에 이어 또 한 권의 독서일기를 선보였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헤드헌터, 번역가, 소설가 등으로 쉼없이 돈을 벌다가 둘째를 임신하고 회사를 그만둔 뒤 “너 집에서 논다며?”라는 말을 듣고 만 ‘전업주부’ 작가가 겪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이자 여성의 가사노동을 폄하하는 차별적 세상에 투척한 사회비평서다. 끊임없이 노동하는 여성에게 ‘논다’는 거짓말을 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지, 주부들의 세상은 왜 이다지도 다른지, 아이 셋을 기른 전업주부는 왜 연금을 받지 못하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고 책 속에서 답을 구한다.
‘잘 나가는 직장인’으로 남부럽지 않은 사회 생활을 하던 여성이 임신과 출산 뒤 전업주부가 되어 고전을 읽으면서 이론을 이해하고 성별화된 일상의 문제를 분석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2011, 한국어판 2014)을 연상시키지만 여성의 일과 노동, 돈과 임금에 집중해 책을 분석하고 써내려갔다는 점이 다르다.
지은이가 펴든 책들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레슬리 베네츠의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 낸시 폴브레의 <보이지 않는 가슴>,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 <혁명의 영점>,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등의 쉽지 않은 고전인데, 그 밖에도 사회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여러 ‘문제작’들을 포함해 감상을 소개한다. 특히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을 밑줄 쳐가며 읽던 지은이가 스님의 성별 분업적 가치관을 비판하며 씁쓸함을 토로하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깨달음과 비슷한 반성적 인식이 머리를 때린다. 자본주의 체제, 종교, 여성이라는 삼박자 트라이앵글 구조를 설명하며 지은이는 “비구니가 쓴 <아빠 수업>이 출간된다 가정해보면” 비판의 이유를 짐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가사를 제 손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온전한 인격체로 존재하기 힘들다. (…) 밥 짓고 빨래하는 행위는 사람에게 자신이 ‘몸’임을 알려준다. (…) 그 작업을 매일 실천에 옮기는 여성은 정치인이 되든 유명인이 되든 권위주의의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 또한 생물학적 결정론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주부들의 무급 노동을 토대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이런 문제제기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 또한 알 수 있게 된다. 지은이는 “전지구적으로 간호사 구인난을 겪거나 어린아이를 돌봐줄 보육 인력을 구하지 못해 돌봄의 공백 상태가 일어나는 것은 여성의 무상노동으로 큰 폭의 이윤을 올려온 자본주의 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가진 체제의 유연함과 양면성은 위기의 시기에 비정규직 여성을 가장 먼저 해고하고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기도 한다. 위기는 하위직 여성의 자리를 경쟁하게 만들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담론까지 강화할 터. 그럼에도 분명히 달라진 것은, 문제를 알게 된 사람은 절대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증거이기도 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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