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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생각’만으로도 좋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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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서영인의 책탐책틈

옛 애인의 선물바자회

김미월 지음/문학동네(2019)


한겨레

김미월이 오랜만에 펴낸 소설집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생각이 많다. “생각만, 쓸데없이 생각만”(‘질문들’) 많아서,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도망가지 않아요’)가, “모든 일에는 그 일이 일어날 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라고, 또 “생각해 보자”(‘오늘의 운세’)고 생각을 다잡는다. 이 소설집의 키워드가 ‘생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들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돌진해 오는 행성에 부딪쳐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고 해도(‘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어느 날 아침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대로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해도(‘오늘의 운세’), 상황이 그렇게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 그는 생각한다. 연락할 가족도 친구도 없고, 직장에서는 오랜 따돌림으로 고립되어 있으니, 오늘 죽어도 달라질 것이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그는 점점 더 근사한 인간이 되어간다. 그가 왕따가 된 것은 왕따로 자살한 친구의 장례식에서 왕따시킨 아이들이 슬피 우는 광경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들과 함께 있지 않고자 했기 때문이다. 흰머리를 뽑아달라는 상사의 부탁을 거절했기 때문에 똑 부러지고 재수 없는 ‘이대리’가 되었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자들과의 적당한 사교 대신 일하는 사람의 자존을 지켰다.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며 “다섯 평 원룸이 관이 된 싱글 라이프의 최후”라는 기사 제목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객관화할 줄도 안다. 죽음을 향해 진행되는 서사가 점점 더 인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빛나게 하는 반전이 그 생각의 과정 속에 숨어 있다.

마흔이 넘도록 결혼은커녕 연애도 해 보지 못한 ‘김완구씨’는 “도망가지 않아요”라는 플래카드를 우연히 보고 신부를 찾아 베트남으로 간다(‘도망가지 않아요’). 웃는 얼굴이 예뻤던 신부는 신혼여행에서 이혼을 선언한다. 통역사는 ‘아이폰’과 ‘설화수 풀 세트’를 사 주면 이혼하지 않겠다는 신부의 말을 전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은 탓이었다. 결혼 상대가 될 베트남 여자들을 양어장 물고기니 무제한 공급이니 하는 식으로 대하는 화법이 언짢았지만, 신부화장을 지운 맨얼굴이 처녀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워서 마음이 안 좋았지만,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고 결국 결혼하러 왔다가 이혼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너무 많은 생각은 오히려 해롭다고, 생각의 중단을 종용하는 조언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제대로, 끝까지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라. ‘생각하는 인간’이 한 그루 사과나무처럼 우리를 지킬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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