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장선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맹자>는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瞽瞍)가 살인을 했다면 순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법과 도덕이 충돌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맹자에 의하면 고수는 당연히 법에 따라 체포될 것이고 순은 묵인할 것이다. 그리고 순은 천자직을 버리고 몰래 아버지를 업고 인적 없는 바닷가로 가서 죽을 때까지 흔연히 즐기며 천하를 잊을 것이다. ‘고수살인’의 케이스는 법의 기준인 공사(公私)와 윤리적 차원의 본말(本末)에서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유교적 고민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송지양(1782~1860)의 <다모전>에 소개된 김조이(金召史)도 이 오래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김조이는 포도청 소속의 다모(茶母)로 범죄 수사를 담당한 직업인이다. 원래 혜민국의 의녀지만 월과 성적이 나쁠 경우 다모에 배속되었다. 김조이는 한성부 소속 관원들과 한 조가 되어 주금(酒禁) 범법자를 색출하는 임무를 띠고 남산골로 출동한다. 어느 양반집에서 술을 빚었다는 제보를 받은 것이다. 양반집 수색에는 다모가 앞서 들어가는데, 부인이 거처하는 안채에 외간 남자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마시든 빚든 술 일체에 대한 금지는 양식이 부족할 때 내리곤 하던 임시 법령이었다. 김조이 사건의 배경이 되는 1832년(순조 32)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극심한 가뭄으로 파종을 그르쳤고 설상가상 장마가 계속되어 이삭이 병들었다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거듭된 재앙으로 경기·충청·황해 3도의 농사가 대흉인 상황에서, 고발자에게는 상금이 걸렸다.
먼저 들어간 김조이가 증거물을 잡고 크게 외치면 남자 관원들이 뒤좇아 가기로 했는데, 과연 서너 되 남짓한 술 단지를 찾아내었다. 이를 본 늙은 안주인은 새파랗게 질린 채 기절해버린다. 긴급 처방으로 할머니의 정신이 돌아오자 다모는 양반의 신분으로 어찌 법령을 어길 수 있냐며 질책을 한다. 할머니의 이유는 이러하였다. 지병이 있는 생원 영감이 좋아하는 술을 못하게 되자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아 아예 몸져눕게 되었다. 이에 병을 구완할 요량으로 곡식 몇 되를 구걸하여 술을 빚게 된 것이다. 살려달라는 할머니의 애원에 다모는 단지의 술을 재에 쏟아버리고, 그릇 하나를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관원들이 다가와 범인을 잡았냐고 묻자, 다모는 범인은 고사하고 시체를 치워야 할 판이라며 툴툴거렸다. 그리고 죽집으로 가서 콩죽 한 사발을 사서 할머니에게 건넸다. 밀고자는 누구였을까. 할머니는 오직 한 사람, 성묘 차 들른 시숙에게 한 잔 권한 사실이 있다고 한다. 다모는 시숙의 나이와 모습을 꼬치꼬치 캐묻고는 집을 나왔다. 기다리던 관원들에게 둘러대기를, 술은 없고 할머니 기절하여 살려내느라 지체되었노라고.
허탕친 일행이 근무지로 복귀하는데, 네거리에서 뒷짐 지고 돌아올 관원들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할머니가 말해 준 용모 그대로였다. 다모는 그에게 다가가 따귀를 올리고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네가 양반이냐? 양반이란 자가 포상금을 노리고 형수를 고발하다니!” 사태를 파악한 관원들은 고발자를 욕먹인 다모를 잡아 상관 앞으로 끌고 가 사실을 보고했다. 상관은 화가 난 얼굴로 범인 은닉죄를 저지른 다모에게 매 20대를 치라고 명했다. 그런데 퇴근 무렵 조용히 다모를 부르더니 돈 10냥을 선물로 주며 “자네가 범법자를 숨겨준 것은 국법에 어긋나기에 매질을 하게 되었네만 자네는 의로운 사람일세”라고 했다. 이 돈을 들고 남산골 그 양반댁을 다시 찾아간 다모는 반은 땔감을 사고 반은 쌀을 사서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한다. 벌금 물지 않게 해준 것도 고마운데 상금은 언감생심이라며 완강하게 거절하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다모 김조이.
김조이가 누구인지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전(傳)이라는 장르가 사실의 세계를 다룬 문학임을 감안한다면, 실제 사건을 소재로 규범적 정의와 인륜적 가치의 문제를 극화한 것으로 보인다. 김조이는 실존과 담론의 경계인이라고 해도 좋겠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뉴스판 한겨레21 구독▶시간극장 : 노무현의 길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