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면역체계 돕거나 해충 번식 막아주기도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생물학자의 집 안 탐사기
롭 던 지음, 홍주연 옮김/까치·1만7000원
한 가정집의 지하실에 있는 알락꼽등이. 까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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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재, 거미, 바퀴벌레, 진드기, 쥐며느리, 톡토기, 다듬이벌레, 꼽등이…. 놀라지 마시라, 여기에 열거한 것들은 야외가 아닌 집 안에서 발견된 절지동물들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응용생태학과 롭 던 교수가 2012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자신의 집을 포함해 미국 전역 1000여 채의 집을 샅샅이 뒤진 결과, 집 한채당 100종 이상의 절지동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도시에 있는 현대식 주택이었다.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는 생물학자인 지은이가 미국, 독일, 덴마크 등 전 세계 주택의 창틀, 샤워기 헤드, 문지방 등 내부를 조사해 찾아낸 약 20만 종의 생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지은이는 “집이라는 나뭇잎을 뒤집어 그 아래에 숨은 야생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집안은 절지동물뿐 아니라 미생물, 세균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이를테면 식기세척기의 세제통은 덥고 습한 환경을 견뎌내는 미생물로 가득한 독특한 생태계이고, 오븐 안에는 뜨거운 열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세균들이 있다. 말랐다가 젖었다가 다시 마르기를 반복하는 샤워기 헤드에는 보통 늪에서나 볼 수 있는 미코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베갯잇과 변기 시트에서도 분변성 미생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 역시 많은 수의 생물을 먹여 살린다. 한 사람이 매일매일 떨어뜨리는 각질의 수는 약 5000만 개에 달하는데, 이는 수많은 세균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침과 같은 체액이 묻은 식탁이나 쇼파는 세균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늑한 환경을 만든다. 천식,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 피부염 등을 일으키는 세균도 있지만, 집에는 생각보다 많은 유익한 생물이 살고 있다. 지은이가 탐사한 집에서 10여 종의 페니실륨(푸른곰팡이)이 발견됐는데 이 중 한 종은 최초의 항생제를 만드는 원료가 되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고 또 다른 한 종은 최초의 콜레스테롤 억제제의 원료가 되었다.
지은이는 오늘날 과도한 살충제 사용으로 인간에게 유익한 생물까지 죽어가고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꽃가루 매개자인 벌, 해충의 천적인 거미 등이 최대 희생자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우리 주변의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면 야생의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건강한 자연 생태계의 지표는 얼마나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느냐는 것이고, 이런 지속가능한 생존의 성패는 인간에게 달려 있다.
2018년 미국에서 첫 출간된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의 책 표지. |
코로나19로 ‘집콕’ 생활이 길어진 이때, 지은이가 했던 것처럼 창턱과 조명 기구부터 나뭇잎 들추듯 들춰보라. 그동안 몰랐지만 함께 살고 있던 다양한 룸메이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집 안 생물들의 존재를 만나고 몸서리치는 이들이라면 다음의 이야기를 곱씹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다양한 집에 사는 수많은 종들 가운데 다수가 우리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필요하기도 하다(…) 그 중 일부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의 작동을 돕는다. 어떤 종들은 병원체나 해충과 경쟁하여 그들을 통제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집 안에 사는 생물은 대부분 무해하거나 유익하다.” 아무렴, 너무 깨끗하면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는 ‘위생의 역설’도 있지 않은가.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땐 미생물, 곰팡이, 곤충들, 반려동물이 묻혀 온 생명까지 함께 사는 집 자체가 거대한 우주이자 생태계라는 진실을 순순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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