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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모든 이야기는 결국 ‘뭔가가 변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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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흐름출판·1만6000원


한겨레

<해리포터>시리즈를 스크린에 옮긴 첫 작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포스터 이미지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인간은 성장한다. 익숙했던 경계를 넘어 낯선 이에게 빠져들게 해서다. 당신이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게 됐다면 그의 이야기를 탐닉할 것이다. 저녁이면 그날에 있던 일들을 얘기하다, 밤이 넘으면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가닿을 수 있다. 이야기는 모든 인간들이 어릴 적 나름의 특별한 결함을 갖게 됐고, 저마다 방식으로 비슷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야기는 인간이라는 종을 설명하는 ‘뇌’의 작동원리에 근거해 있다. 좋은 이야기들은 제각각이지만 모든 인간이 하나의 종이라는 진실을 전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 진실을 알아챈 인간은 좋은 이야기를 만나며 자라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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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야기를 뇌 과학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작법서이자 과학교양서다. 기자이자 소설가인 지은이 윌 스토는 이야기 창작 이론 가운데 몇몇 개념이 뇌와 마음에 대한 연구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내 이 책을 썼다. ‘플롯’ 위주로 설명된 작법서에 빠져 있던 콘텐츠 제작자에게 이 책은 ‘인물’까지 관심을 넓힐 기회를 준다. 뇌가 작동하는 방법에 근거해 탁월한 인물을 만들면 이 인물이 극을 정의할 것이라고 지은이가 설명해서다. 책은 소설 <안나 카레니나>, 영화 <시민 케인> 등의 고전이 어떻게 인간의 뇌를 자극해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본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 <해리 포터>, <스타워즈>, 미국 드라마 <로스트>, <브레이킹 배드>도 분석한다.

책은 △만들어진 세계 △결함 있는 자아 △극적 질문 △플롯과 결말로 구성돼 있다.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는 층위를 4개의 지점으로 나눈 것이다. 첫 장은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는 ‘변화’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가 듣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뭔가가 변화한’ 이야기”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설명은 “우리의 지각 체계는 사실상 변화가 감지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경과학자의 말로 변주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나.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가 쓴 <이방인>의 첫 문장도 ‘변화’를 담고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소설도 아닌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 또한 변화가 보인다. 둘째 장에서는 심리학 개념을 빌려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나온다. 전문적인 스토리텔링 지식이 필요한 독자가 아니라면, 빠르게 책을 읽어 셋째 장인 ‘극적 질문’의 ‘근원적인 상처, 수수께끼의 열쇠’ 파트까지 한달음에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심리적 진실에 있다. 많은 좋은 이야기에서는 인물이 가진 상처의 기원을 모호하게 남겨둔다.” 지은이가 셰익스피어는 짐짓 자신이 만든 주인공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던 이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대목이다. 그는 마음을 연구하는 과학도 셰익스피어의 ‘회피적 결정’이 옳았음을 입증했다고 덧붙인다. 작법으로 운을 뗀 책은 인문학적 통찰과 뇌과학의 연구결과를 접목해 ‘좋은 이야기는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까지 독자를 데려간다. 누군가의 상처를 바라보게 만들면서도 모호하고 알 수 없게 하는 작업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 때 왜 필요한 걸까. 인간은 이야기를 먹고 자라고, 좋은 이야기의 윤리는 뇌 과학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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