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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시로 이어온 항쟁, ‘5월시’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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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시’ 동인 26년 만에 제7집 발간

기존 동인집 더해 9권 전집 나와

“누구나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게”

‘광주 정신’ 시로 계승한 동인들

“부끄럽지만 설렘과 자부심도”

광주에서 시 판화전도 열 계획

5월시 동인시집(전9권)

강형철 외 지음/그림씨·세트가 10만5000원, 각 권 9500원~1만4000원


한겨레

광주 5·18 민중항쟁 정신을 시로 이어가겠다는 취지로 결성돼 1981년에 제1집을 냈던 ‘5월시’ 동인들이 동인집 제7권 출간을 기념해 19일 저녁 서울 인사동에서 모였다. 먠 오른쪽부터 고광헌, 강형철, 김진경, 나종영, 나해철, 박몽구, 최두석 시인. 동인 곽재구, 윤재철, 이영진 시인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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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시’는 우리에게 언제나, 어떤 죄의식으로 먼저 온다. 그것은 그들의 시가 동시대에 일어난 불행에 대한 열렬한 추도사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시를 읽으면 나는 괴롭고 두렵다. 일군의 시적 집적물들이 한 시대를 역사 앞에 소환하여 ‘너희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였느냐’를 추궁할 때 이 물음을 회피할 방도가 적어도 나에게는 없어서이다.”

한겨레

1983년 9월에 나온 ‘5월시’ 동인 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어라>에 붙인 해설을 시인 황지우는 이런 말로 시작한다. 그의 말처럼 5월시 동인의 존재는 모종의 죄의식을 촉발했다. 피와 죽음의 날들로부터 겨우 1년여가 지난 1981년 7월, 첫 동인집 <이 땅에 태어나서>를 낸 5월시 동인은 그해 5월 학살과 항쟁의 기억을 그 이름에서부터 선명하게 내세웠다. 한국 문학사를 명멸한 숱한 동인들 가운데에서도 5월시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에 수반하는 문학적 이념에 가장 긴밀하게 조응한 동인이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는 해마다 한 권씩 동인집을 내고 1983년과 1986년에는 판화시집도 엮어 냈으나 1994년에 제6집 <그리움이 끝나면 다시 길 떠날 수 있을까> 이후로는 오래 침묵을 지켜 온 5월시 동인이 그로부터 무려 사반세기여 만에 제7 동인집 <깨끗한 새벽>을 선보이며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이번에는 7집과 함께 기존의 1~6 동인집과 판화집 두 권까지 복간해 아홉 권을 한꺼번에 ‘5월시 동인시집’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 냈다. 나온 지 오래여서 절판된데다 도서관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5월시 동인시집이 5·18 광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대학 때 5월시 동인집을 읽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한데, 출판을 하면서 여러 도서관을 다녀 보아도 전체 동인집을 소장한 곳이 없더군요. 그래도 한 시대를 수놓은 동인이 이렇게 대접 받아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 이런 책을 내지 않는다면 출판을 해서 무엇 하나 하는 생각에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19일 저녁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출간 기념 모임에서 책을 낸 출판사 그림씨의 김흥식 대표는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모임에는 강형철 고광헌 김진경 나종영 나해철 박몽구 최두석 등 동인 일곱 명이 나왔다. 나머지 동인 곽재구 윤재철 이영진 시인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김진경 박몽구 나종영 이영진 박주관 곽재구 여섯 시인으로 출발한 5월시 동인은 나해철 윤재철 최두석이 2집부터 가담했고 고광헌과 강형철이 각각 5집과 6집부터 동참했다. 박주관 시인은 그 뒤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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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시’ 동인이 1983년에 낸 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으라>에 실린 김경주의 판화 <봄을 위하여>. 그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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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시 동인 제7집 <깨끗한 새벽>의 제목은 이 책에 실린 박몽구의 시 ‘부드럽지만, 끝내 차가운 벽 넘어 - 송백회, 광주를 지킨 여성들’에서 가져왔다. 80년 5월을 전후해 광주·전남 지역 구속자 가족들과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만든 여성 모임인 송백회를 기린 이 시에서 시인은 “그 따스한 사랑의 믿음으로/ 죄 없는 수인들은 긴 어둠의 시간 견뎌냈고/ 마침내 한 사람을 위한 욕망의 성 허물고/ 삼천리에 깨끗한 새벽을 열었다”라고 노래했다. ‘깨끗한 새벽’이 5월 광주항쟁의 정신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사실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모진 죽음의 새벽, 도청을 사수하던 윤상원의 총에서는 장전된 채 계엄군을 향해 격발되지 않은 탄환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그 새벽의 의미를 세계사 앞에 세웠다고 보았고, 그 빛의 세계가 우리 동인들의 가슴 앞에서도 빛나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에게 참된 시를 말하라 하면 거기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장전된 채 격발되지 않은 총알이란 전남도청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를 사수하고자 하는 각오와 더불어,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폭력과 살상이 아닌 평화와 희생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광주 시민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다. 5월항쟁 당시를 회상한 나해철의 시 ‘윗옷’ 중 “골목으로 뛰어들어/ 숨을 곳을 찾아 달릴 때/ 윗옷을 벗어 던졌지// 옷은 바로 전달/ 4월에 치른 혼인 예복”, 그리고 2019년 9월 유엔 기후행동회의에서 트럼프를 노려보던 어린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눈빛을 노래한 강형철의 시 ‘그레타 툰베리’ 중 “경멸과 분노로 타오르던 눈빛/ 참담한 저주와 절망의 눈빛// 그 눈빛이 오늘 나의 가슴으로 날아온다”는 구절은 그 새벽 윤상원의 격발되지 않은 총알의 또 다른 변주들로 읽힌다.

19일 출간 기념 모임에서 나종영 시인은 “새로 동인시집을 내기로 하면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두려움도 많았는데, 막상 책을 보니 설렘과 함께 약간의 자부심도 생긴다”며 “무려 26년 만에 7집을 냈는데, 앞으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8집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두석 시인도 “삶에서든 시 쓰기에서든 처음이 중요하듯 마무리도 중요한 법인데, 5월시 동인의 작업 역시 적어도 이 정도로는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김진경 시인 역시 “처음 동인시집 전권 출간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5월시가 박물관에 안치되는 느낌이어서 내키지 않았는데, 신작 시들로 7집을 내기로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무려 15년 만에 시를 발표하게 되었다”며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나종영 시인은 5월시 동인 전집 출간을 기념하는 시 판화전을 오는 7~8월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전시에는 동인들의 시 두 편씩과 동료 시인들의 시 한 편씩 모두 50점 가까운 시 판화 작품이 나올 예정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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