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변심 "강한 달러 유지하기 아주 좋은 때"
美연준 활약에 위기감 줄었지만 달러 유동성 빡빡
글로벌 교역 위축도 한몫…달러인덱스 100선 고수
수요부족에 弱달러 필요 줄어…국채 대거발행도 염두
코로나19 확산·美대선 끝날 때까진 强달러 유지될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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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지금은 강한 달러를 가져가기에 아주 좋은 때입니다. 우리가 달러를 강하게 유지한 덕분에 모두가 달러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죠.”
지난 14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꾸준히 유지해 오던 달러화에 대한 자신의 스탠스를 완전히 뒤집는 발언을 이렇게 했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달러 가치가 너무 비쌉니다. 강(强)달러가 우리 경제를 망치고 있습니다”라고 거리낌 없이 얘기해 시장을 놀래켰었죠. 그리고도 이후론 이런 얘기를 밥 먹듯 해댔습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트럼프 대통령은 위기 상황에서 달러화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여실히 체감했을 겁니다. 3월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글로벌시장에선 신용경색과 달러화 부족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달러가 왕(Dollar is king)`이라 외쳐댔습니다.
이렇게 달러값이 뛰자 정작 급해진 건 미국이었습니다. 달러가 너무 강해지면 미국 기업이나 수출에 어려움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강(强)달러에 자국 통화가치가 급락한 다른 나라들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국채를 팔아 버리면 큰 불안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를 안정시키고 다른 나라들이 미 국채를 마구 내다팔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총대를 멨습니다.
연준은 3월15일 유로존과 일본, 스위스, 영국, 캐나다와의 상설 통화스왑 금리를 낮춘 것을 시작으로 나흘 뒤 한국과 브라질, 멕시코 등 9개국과 통화스왑을 새로 체결했습니다. 그리곤 31일에 `외국·국제 통화당국을 위한 임시레포기구(FIMA)`를 도입해 해외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담보로 맡기면 연준이 달러화를 약정된 기간 동안 지원해주는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도 도입했죠. 이를 통해 연준은 시장에 달러화를 아낌없이 공급했습니다.
다행히 이같은 연준의 발빠르고 입체적인 대응 덕에 달러 스퀴즈 공포가 크게 잦아든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달러 유동성은 빡빡한 상황이고 이로 인해 달러값은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실제 주요 교역상대 6개국 통화가치 대비 달러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2017년 이후 처음으로 100선 언저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상황입니다.
달러화 가치와 글로벌 교역량 변동률 추이. 교역량이 줄어들면서 달러화 가치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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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글로벌시장 참가자들에게 달러화 유동성의 공급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달러화를 시장에 뿌려주는 연준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 교역입니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글로벌 교역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달러화 유동성을 공급하는 연준의 역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최근 연준은 돈 풀기의 속도를 다소 줄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준금리인 명목 연방기금금리(FFR)를 0~0.25%로 정했는데, 유동성이 넘치다보니 실세 FFR은 20일(현지시간) 기준으로 이 기준금리 범위의 맨 하단쪽인 0.05%까지 내려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준은 자산매입 규모를 줄이고 있는 것이죠.
또한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속속 경제활동 재개에 나서는 국가들이 나오고 있지만 글로벌 교역이 충분히 살아나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연준의 유동성 공급은 속도를 조절하고 있고 글로벌 교역은 아직도 저조하니 달러 유동성이 아주 넉넉하지 않고, 그로 인해 달러값이 내려오지 않는 상황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로벌 교역이 살아나야만 달러화가 넉넉히 공급될 수 있고, 그래야 달러화가 다시 약해질 수 있는 겁니다.
얼마 전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국제 교역이 코로나19 여파로 13~32%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큰 교역 침체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글로벌 교역은 일러야 올해 연말 또는 내년초는 돼야 어느 정도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최근 독일과 프랑스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5000억유로 규모의 회생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뒤로 랠리를 보였던 유로화가 달러 강세의 발목을 잡아주긴 했지만, 아직은 역부족으로 봐야할 겁니다. 결국 이 세계가 코로나로 인한 대혼란에서 벗어날 때 쯤이면 비로소 달러화가 다른 주요 통화대비 약세로 돌아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진 상황은, 냉철하게 주판알을 튕기는데 익숙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약세를 고집했던 건 미국 제조업체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수요가 꺾이자 굳이 달러화 약세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 셈입니다. 아무리 싸게 팔아도 사 줄 사람이 없다면 가격 경쟁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달러화 약세에 따른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달러화가 강해지면서 최종재 등의 수입가격이 하향 안정화하하고, 이것이 미국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개선시키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내수에는 오히려 득(得)이 더 크다고 불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과거 경기침체 국면에서도 강 달러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소비가 빠르게 회복된 경험이 있었구요.
아울러 올 2분기에만 3조달러, 3분기에 추가로 8000억달러에 이르는 국채를 찍어 내 재정지출 재원을 마련해야할 판이니 미국 국채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선호가 유지될 수 있는 강달러 환경을 원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 최근 달러화 강세 덕에 달러화 헤지비용이 줄었고, 이를 이용해 엔화를 해외로 퍼내 엔화 약세를 유도하려는 일본 정부가 자국 내 국부펀드와 연기금 등을 동원해 미국 국채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트럼프와 미 재무부가 노리는 그림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스탠스 변화가 달러화 강세를 더 부추길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장사꾼 트럼프가 일시적으로 미 국채를 팔아먹겠다며 달러화에 대한 마음을 바꿔 먹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 달러화가 강해지는 걸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 들였다는 생각도 들구요. 역지사지 해 보면 당장 트럼프에게는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한 달러화 강세를 막는 일보단 6개월도 채 안 남은 대선에서의 승리를 쟁취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할 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화웨이로부터 시작된 중국 때리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고 이는 또다른 국제적 긴장을 만들고, 달러화 강세를 지지할 겁니다. 기준금리의 실효하한을 언급하며 마이너스 금리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고집도 한 몫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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